아빠가 없는 밤은 매일같이 너무 길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걱정했던 것은 아빠의 죽음이었다.
커다랗고 따뜻하고 다정한 아빠가 죽고 없는 삶이라니.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린이날에 누구 차를 타고 놀이공원에 가야하나,
늘 우리 가족이 앉던 긴 교회의자의 빈자리는 누가 대신 채우지?,
결혼식엔 누구 손을 잡고 입장하며, 무엇보다 친구들이 아빠 없는 애라고 놀리면 어떡하나! 으악.
지독하게 현실적인 걱정들은 주로 아빠의 귀가가 늦어질 때 절정에 달했는데
이 공포스러운 망상들이 클라이맥스에 치 닫을 때면 나는 엄마 몰래 아빠의 구두가 없는 현관에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질질 짜가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직은 안돼요.
제가 아빠보다 먼저 죽게 해주세요. 1등으로 죽는 건 동생이고요 그 다음에 제가 죽고요 그 다음에 엄마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죽게 해주세요. 아멘
그렇게 우리 가족이 죽는 순서를 하나님께 눈물로 부탁한 뒤 현관 벽에 기대어 초조하게 손톱을 만지작대고 있으면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열쇠를 찾는 소리. 짤랑.
나는 아빠가 열쇠로 문을 따는 사이에 방으로 튀어 들어가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했다.
아빠의 죽음을 걱정하느라 울며불며 못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킬 수는 없었다.
곧 이어 들어온 아빠가 자는 동생과 자는 척 하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아빠의 몸에서 찬 공기와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아빠를 완벽히 속이기 위해서 ‘음냐 음냐’하는 다소 작위적인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아빠는 나의 자랑이었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고 힘이 세고 똑똑한 사람이었으며.
아빠의 요리는 소금과 설탕을 바꿔 넣어도 천국의 음식처럼 맛있었고 아빠가 해주는 재밌는 이야기는 이 지구에서 제일 웃겼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를 때면 아빠가 자주 들려주던 18번 유머가 있었다.
혀 짧은 할머니 집에 들어온 혀 짧은 도둑 이야기였는데.
도둑이 할머니에게 “꼰짝마!”라고 말했더니 할머니가 너무 놀라서 “아 깐짝이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직도 이 유머가 그렇게 웃기다.
열 살의 어느 이른 아침, 설 잠 중에 엄마 아빠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웅얼웅얼한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가야지 뭐 어쩌겠어”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엄마의 대답은 없었고, 이어 빈 밥그릇을 끼걱끼걱 긁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어디 멀리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고 졸린 척 눈을 부비며 거실로 나갔다. “아빠 어디 가?”
아빠는 멀리 가야한다고 했다. 어디로 가느냐 물었더니 사막이랬다.
그 때 까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였다. 리비아.
사막에 물을 끌어오는 큰 공사를 하는데 거기에 아빠가 가야한다고, 한 달 뒤에 떠나서
내가 열 한 살이 되면 돌아온댔다.
나는 악을 쓰며 울었던 것도 같고, 어른스러운 척 눈물을 참았던 것도 같다.
아빠의 믿기 힘든 얘기를 듣고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 뒤, 정말 아빠가 떠났다.
아빠가 없는 밤은 내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365밤이나 계속될 거였다.
이제는 현관 앞에서 울며 기도해봤자 아빠의 열쇠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엄마 말에 따르면 리비아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정보통신이 좋거나 사람들의 성미가 급한 곳이 아니어서 전화 한 통화 하려면 답답함에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야 하는 곳이랬다.
엄마는 정말 답답함에 가슴을 쳐가며 전화통화를 했다.
아빠한테 전화를 걸려면 아빠 회사와, 리비아 통신원과, 그 통신원이 연결시켜준 리비아 현지 회사와 사무실을 거쳐야했다. 그러는 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연결된 전화는 느렸고 자주 끊겼고 어떨 땐 맥없이 끊어져 버리기도 했다.
전화가 끊어지면 엄마는 한 시간을 더 가슴을 쳐가며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걸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통화시간은 고작 10분뿐이었다.
아빠와 첫 통화를 하는 날, 엄마는 나에게 절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울면 아빠가 약해질 거라고 했다. 나의 크고 강하고 멋진 아빠가 약해진다니! 그 얘기를 들으니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울지 않겠노라는 확신할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이어 받았다.
“아빠”
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에코처럼 퍼졌다.
아빠, 아빠, 빠... 빠..
희미해지는 내 목소리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아빠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딸!...딸,,,알,,,알,,,,”
나는 첫 음절을 듣자마자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조용히 울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정도의 자제력을 갖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으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앙’
내 우는 소리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빠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으나 내 울음소리에 덮여 맥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서둘러 내 전화를 뺏었다.
엄마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아빠 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울음의 흔적은 거기 남아있었다.
아빠가 없는 일 년의 밤은 매일같이 너무 길었다.
아빠가 참을 수 없게 보고 싶었던 어느 날 밤. 현관에 있는 아빠의 구두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빠가 약해지지 않게 해주세요. 아빠가 나 없는데서 죽지 않게 해주세요.
살짝 열린 안방의 문틈 사이로 엄마의 무릎 꿇은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도 그 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