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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May 07. 2020

이기적 칭찬

칭찬 없이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분이 항상 저한테 예쁘다고 해주시니까, 늘 예뻐 보이고 싶은데 오늘 너무 바빠서 화장도 못하고.. 얼굴이 엉망이네요. 죄송합니다.”     

우연히 보게 된 브이로그에서 여자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신경 쓰이는지 수시로 이마와 뺨을 어루만지며 머쓱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사과를 했다. 


그 날 잠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뒤척이며 그 여자를 생각했다. 자신의 맨얼굴에 대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과. ‘죄송합니다’라는 다섯 글자 앞에는 생략된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사과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구독자들이 순수한 호의와 팬심으로 건넨 칭찬일지도 몰랐다. 그의 ‘여러분’들이 ‘예쁘다’는 칭찬을 ‘항상’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본인의 맨얼굴을 ‘엉망’이라고 폄하하며 사과할 일은 아마도 없지 않았을까. 


그저 가볍게 스쳐 보낼 수도 있었던 영상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이유는 그것이 결코 찰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플레이되는 장면이며 나는 여기에 하루 중 최소 한 번 이상은 칭찬하거나 칭찬받는 사람으로서 등장한다. 칭찬의 목적은 분명 말하는 사람의 호의와 관심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일 테지만 어떤 칭찬은 때때로 목적을 벗어나 듣는 이의 삶을 한 겹 더 피곤하게 한다. 주로 은근한 평가가 가미된 칭찬이 그러하다.


      

“머리 잘랐네? 전보다 훨씬 낫다!”

“오늘 웬일로 화장했어? 너무 예쁘다”

“살 빠졌어? 보기 좋다!”

“역시 너는 그런 스타일의 옷이 제일 잘 어울려.”     



언젠가의 여름에 친구와 술 한 잔 하던 중이었다. 안주는 먹지 않고 술만 마시던 친구에게 그러다 속 버리겠다고 걱정했더니 그 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살이 찐다며 하소연했다. 무심코 “무슨 소리야 날씬하기만 한데!”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너도 내 다리 보면 놀랄걸?”


친구는 본인의 하체가 상체에 비해 튼실한 것이 콤플렉스라고 말하며 남들은 자신의 늘씬한 체형을 부러워하는데 다리를 보면 실망하거나 놀랄까 봐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결코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했다. 한 여름에 그가 입고 나온 긴 청바지를 보았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앞 다투어 밀려왔다. 친구의 콤플렉스가 비난이 아닌 칭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녀에게서 반바지를 앗아간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들이 밀린 숙제처럼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 친구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핑계를 찾았다. 

듣기 좋으라고, 친구 기분을 띄워주려고 한 칭찬이었다고. 친구에게 어떤 부담을 주려던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변명하면 할수록 그동안 내가 친구에게 해왔던 칭찬은 나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만 명확해졌다. 그동안 내가 무심결에 뱉어왔던 수많은 칭찬들이 부끄러웠다. 무릇 칭찬이란 예의이자 애정 그리고 센스라고 배워왔으며 나는 예의 있고 센스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칭찬에 후한 사람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해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어찌 그리도 뻔뻔하게 남들의 모습을 ‘예쁘다’ 혹은 ‘괜찮다’며 선심 쓰듯 인정해주는 얘기를 해왔던 건지 모르겠다. 과연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요즘 나는 상대방을 향한 가벼운 칭찬을 경계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내 만족으로 그칠지도 모르는 이기적인 칭찬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안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태여 한 겹의 무게를 더 얹고 싶지 않아서이다. 칭찬 없이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접적인 언어를 빌린 관심과 칭찬 대신 다정한 행동과 깊이 있는 눈빛으로 애정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 4월 25일 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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