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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공유하는 곳

문화유목민의 취향 여행

by 인생은 아름다워




“(…) 파악된 세계의 아름다움은 곧바로 사람들과 공유한다. 좋은 것은 함께 할 때 더 큰 힘으로 되돌아온다는 지론 때문이다. 자신의 집을 공개했고 사는 동네의 거리를 예술품으로 채웠다.


문화 유목민은 주위의 시선과 억압 탓에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살아 본 적 없는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 묻고 있다. 자신의 삶을 꿈꾼다면 채워야 할 구체적 내용물이 있는지를, 세상의 기준을 자신이 세우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들 수 있는지를, 무턱대고 따랐던 낡은 관성부터 끊어야 순서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세상의 기대란 얼마나 멋진가.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아야 한다. 덧없는 삶에 맞서는 유일한 항거일 테니까.


문화 유목민은 일찍부터 허황된 구호와 거창한 삶의 목표를 거부했다. 대신 작고 사소한 행복으로 채워지는 개별적 삶의 밀도가 더 중요하다 여겼다.


커피잔의 색깔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며 치즈를 예쁘게 자를 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칸딘스키의 그림과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집을 보며 더 높은 세계에 도달한다. 마음에 드는 턴테이블을 돌려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책상 위를 비추는 스탠드의 불빛이 취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런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에서 바라던 행복이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우리들에게 그의 선택은 선명한 실체로 다가온다. (…)”


윤광준 문화칼럼니스트 _전시 서문 중 일부 발췌





나는 미술계에 있으면서도 가끔(자주) 미술관의 전시장이, 갤러리의 하얀 벽면이 싫었다. 세상에 거대한 벽을 세우고 나와 다른 것들로부터 침입받지 않겠다는 거만과 오만 방자함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가끔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내게 별마당의 “문화 유목민의 취향 여행” 전시는 특별했다.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해 온 그의 수많은 소중한 취향들을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내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소중할수록 꼭꼭 숨기고 귀한데 모셔두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관심을 가질 때 그 수집품도 더 반짝이며 긴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도 똑같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한 후가 아닌 그 과정마다 작은 행복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아야지. 거창한 행복은 미뤄두고 그저 당장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이 끌리는 일을 저질러 버리기로 했다.


미술에서 문화예술로, 미술과 기술로, 미술과 금융이, 미술과 유통업으로, 미술로 부동산 개발업으로 내 세계도 확장을 시켜야 한다는 필수 불가결한 사실이 신난다. 난 앞으로 좀 잘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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