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는 도피주의에서 착안했다. (…)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도피주의를 파편화되고 불안한 현실을 마주하고 항해해가는, 또 타인과 나를 연결해주는 비평적 도구로 삼아야 할 것이다.” (?????????)
11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전시 소개 자료를 보면서 도무지 마지막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엔날레의 특성상 실험적, 도전적 작품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서 전시의 주제와 참여작가의 작품이 과연 어떠한 교집합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감독과 전시를 준비한 팀이 이번 비엔날레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예술을 몰라서 일수도)
기획자들은 마이너 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전시장의 불을 모두 끈 것 같았다. 침침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는커녕, 한 시간가량 전시를 보고 나오는 관람객에게 눈의 피로와 함께 엄청난 두통을 선물로 줬다. 결국 전시장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결론. 관람객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고민했더라면 충분히 대안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철저히 기획자 중심의 사고가 가져온 악수였다.
미디어 작품의 특성상 오랜 시간 작품 앞에 머물러 긴 이야기를 봐야 했지만 엉성한 전시의 구성과 예술이라는 멋에 자아도취한 기획, 관람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통행식 소통 방식에 나는 시간이 아까워 작품을 더 자세히 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으면 임팩트 있는 시각 예술이 아니라 소설과 같은 문학계로 장르를 전향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에 화가 났다.
범예술계인 디자인이나 광고 대중예술계만 보더라도 예술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이는 철저히 시장의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대중과 시대가 원하는 것들을 창작하여 예술로 시대를 보여주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순수예술계의 미술작가와 전시기획자는 ‘예술적’이라는 말로 맥락 없는 모든 것들이 통용되고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순수예술은 마이너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비엔날레와 같은 이벤트에는 더더욱 난해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총체적 난국이 아쉽기만 하다.
이런 구시대적 발상에 심지어 전시기획을 자기 복제까지 하고 있다니, 언론도 평론 그룹도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침묵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번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또한 당연히 시민의 세금으로 진행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전시다.
나는 정부와 기업이 예술을 너르게 후원하고 지원한다고 미술계가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지원금에 기대는 가난하고 나약한 작가와 기획자만 양산해 낼 뿐, 시장과 시대 그리고 글로벌 경쟁에서 실제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이 소외되고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검해야 한다.
이 전시기획을 통해 수많은 서울 시민과 서울시에 어떠한 유무형의 공익적 유익이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계에 대한 예산이 적다고 그 돈이 아무렇게나 눈먼 돈처럼 쓰여도 되는 건 아니니까.
반성해야 한다. 이런 전시를 기획한 감독을 임명한 주최사와 서울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