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0일
<요즘 내가 글을 읽을 때의 버릇>
나는 요즘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 주로, 어떤 단어들을 어떻게 나열하였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
학창 시절의 나는 마음에 든 소설 한 권 정도야 두어시간이면 뚝딱 다 읽어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글 하나를 읽어내는데, 지겹도록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문장을 예쁘고 간결하게 쓰고싶다 생각한 순간부터, 읽을 때의 버릇도 조금씩 바뀌어 온 듯 하다. 이후로 나는 종종 작가들의 글을 읽는 순간순간을 감탄으로 채워 보내고 있다. 역시는 역시. 어쩜 이리 예쁜 문장을 만들어냈을까.
그래서 한 줄의 짧은 문장에서도 나는 쉽게 떠날 수가 없다.
글을 써보겠다는 오기나 동경이 나를 이리 만든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것은 나에게 없다. 굳이 이렇게 변한 이유를 찾아보자면, 하나는 논문을 쓸 때 문장이 길다는 지적을 몇 년이나 받아왔던 것 때문일테고, 또 다른 하나는 글솜씨가 없어도 너무 없는 박물관 학예사들의 장황한 설명문을 번역하면서 쌓인 고통들 때문일 것이다. 아니, 잠깐만. 사실 “글솜씨가 없어도 너무 없는 박물관 학예사”와 “나” 사이에는 등호가 그 자리를 꾸며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간결하고 예쁜 문장을 쓰는 것에 약간의 집착이 생겼고 그것이 읽는 습관을 바꾼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랜만에 한국 작가의 소설책 한권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근 10년간 한국어로 된 책이라면 소설이든 연구서든 외국작가의 번역서만 읽었다. 그래서 글의 구상단계부터 한국어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한문장 한문장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벌써 몇시간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지금 50페이지도 채 읽지 못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일까 글 구경을 하는 것일까. 분간이 안되기 시작했다.
추기. (a.k.a TMI)대부분의 박물관 소속 학예사들은 연구를 업으로 삼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지는 않는다. 게다가 정보 전달에는 욕심이 많아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문장 안에 넘칠때까지 꾹꾹 눌러담는다. 거기에 더해 미처 전달하지 못한 정보를 끼워넣기까지 한다. 물론 쓸데 없이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한다.
마침 최근에 한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 원고를 번역했다. 종이를 오려붙이듯 문장을 자르고 도려내고 다시 결합시키는데 꽤 애를 먹었다. 교정일을 하는 건지 번역일을 하는 건지 잠깐 헷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