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딥코브(Deep cove)에 도착했다.
딥코브는 한국에서 지인에게 강력 추천을 받았다. 근처에 허니 도넛 맛집이 있다고. 밀가루 귀신은 빵을 위해 등산을 가기로 했다. 새벽에 내린 비 덕분에 코로 들어오는 내음이 더 상쾌했다.
잠시 주문하러 들어간 연주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예삐, 헤이즐.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딥코브 허니 도넛. 기름에 튀긴 옛날 도넛 같은 맛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빵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라니. 여행 온 기분 만끽하며 허겁지겁 먹었다. 딥코브가 여행 일정에 있다면 추천한다.
이미 등산 초입부터 흥분한 예삐와 헤이즐, 그리고 온통 흔들린 사진들. 딥코브 등산 난이도는 낮은 편이었지만 워낙 저질체력인 난 따라가기 바빴다. 연주는 평소에 애들과 달려서 등산을 한단다. 그게 가능해..?
정이 많은 예삐는 내가 뒤쳐질 때마다 이렇게 뒤를 돌아 확인하며 기다려준다. 연주가 너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딥코브 정상.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신선한 공기와 사진에 담기지 않는 풍경.
딥코브엔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은 리드 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강아지들을 풀어놨더라.
등산이 끝나니 해가 비춘다.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가져본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시간들. 정신없는 현실에서 잠시 멀어진 지금, 나 여행 중이구나 한다.
서로 등 돌리고 자는 귀염둥이들. 너희도 힘들긴 하구나.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아직 일정이 남았다며 데려가는 연주.
아니 등산을 끝내고 왔는데 또 등산이라니요. 하루에 두 번은 좀 아니지 않니 친구야. 밴쿠버 여행의 필수코스라며 린캐년 공원으로 날 데려왔다.
심지어 운동이 별로 안된다며 힘든 코스 골라서 가는 친구 덕분에 마지막엔 내가 멍멍이들처럼 네발로 걷고 싶더라.
이 다리만 건너면 집이다!
여행할 때 숙소도 잘 안 옮기고 동네 근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인데 역시 낯익은 동네가 나오니 마음이 편안하다.
아침 일찍 허니 도넛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거의 실신 직전에 먹은 음식들. 말레시아 식당 바나나리프라는 곳이었는데 기억도 안 날 만큼 허겁지겁 먹었네. 양이 대단했던 기억. 밴쿠버 음식들은 양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다양한 음식점을 갔었는데 대부분 남은 음식을 포장해 왔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가. 밴쿠버의 저녁은 어쩜 이렇게 선명하고 예쁠까.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맥주와 안주거리. 특히 저 주황색 멜론이 정말 달았다.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멜론과 같은 건가. 사진 보니 또 먹고 싶네.
여러분 우리 예삐 애교 좀 보셔요.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사랑!
다음 날 출근을 앞둔 친구의 컨디션을 위해 쉬어가는 하루. 아침에 사 온 빵으로 간단하게 만든 브런치. 연주가 스크램블 에그 만들면서 치즈를 넣은 게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서도 종종 해 먹었다.
낮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운 오후.
부지런한 그녀는 또 산책을 나갑니다. 너희들은 좋겠다 부지런한 주인 둬서. 새벽같이 출근하면서 그전에 애들 산책까지 다 시키는 내 친구.
헤이즐은 예삐가 외로울까 데려온 아이. 예쁜 얼굴만큼 새침하고 질투도 많다. 어리지만 천방지축 예삐에 비하면 너무 점잖고 기특한 아이. 추우면 코가 빨개져서 니트를 입혔는데 너무 귀엽잖아 정말.
갑자기 2주나 눌러앉은 친구 때문에 고생하는 연주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 봤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조개 해감도 시키고, 남은 와인도 넣기!
걱정과는 달리 괜찮은 비주얼의 봉골레 파스타.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야!
세 가족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쉽다.
2019년 이야기를 꺼내어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