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셋째 날 아침은 조금 흐렸다. 레인쿠버 시작인가 두근두근 했지만 이내 그쳤다. 날씨 운 최고!
연주네 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말 멋있다.
이 날은 관광객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개스타운 증기시계를 보기로 한 날. 아침에 왔던 비 덕분에 거리가 더 청량해 보인다. 유럽과는 다른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밴쿠버는 좀 더 정돈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론 빈티지스러운 유럽이 좀 더 내 취향이긴 하지. 신축 아파트나 빌딩들이 많지만 건물들 사이 간격이 널찍널찍해서 전혀 답답한 느낌이 없다. 그에 비해 좁은 땅덩어리에 수많은 건물을 쌓고 또 쌓아 올리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확실히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거의 200년이 된 시계라고 했나. 특정 시간이 되면 기적 소리와 함께 증기가 올라온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엄청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다. 나도 이 날은 관광객처럼 기념품샵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었지. 그 유명한 단풍국 메이플 시럽을 샀던 걸로 기억한다.
밴쿠버에선 대부분 카드결제를 이용했는데 그때마다 음식 가격 외에 서비스(팁)에 대한 퍼센티지를 선택하도록 기계에 뜨는 게 신기했다. 제일 낮은 게 7%였나. 시간이 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꽤 높은 금액을 팁으로 제공하는 듯 보였다. 밴쿠버의 인건비가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대신 식료품 물가는 조금 낮은 것 같다. 그래서 연주도 혼자 지낼 땐 외식보단 대부분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해결한다더라.
여행을 갔던 게 10월이라 단풍이 정말 많이 들어 있었다. 단풍국 다운 풍경! 마트 가서 비타민 쇼핑하고 커피 한 잔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와는 반대론 부지런 그 자체인 연주. 집에 가서 잠깐 쉬고 바로 애들 데리고 산책 나왔다. 스탠리 파크까진 거리가 좀 있어서 근처 항구 쪽 공원(?)을 걸었는데 너무 좋더라.
날씨 너무 이쁘잖아. 그냥 집 앞 5분 거리에 바다가 있다니요. 밴쿠버에선 강아지 안 키우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운 것 같다. 심지어 대형 마트나 옷가게 앞에 강아지들을 위한 펫 파킹존이 물컵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 날도 운동하는 사람 대부분 애완견과 함께였고 서로 매너를 지키는 것도 멋있었다.
산책 중에 연주, 예삐, 헤이즐 가족사진 찍어주기. 필카로도 찍어서 연주에게 줬는데 왜 파일로 안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 나도 단풍 아래서 새침데기 헤이즐과 한 컷!
걷다 보니 이렇게 예쁜 일몰도 만났었네.
밴쿠버는 낮보다 밤이 더 예쁜 것 같다. 저녁 늦게 돌아다닌 적은 많이 없는데 뭔가 어둑어둑 해질녘 밴쿠버 거리가 너무 예쁘더라. 영화 속에 나오는 미국 같은 느낌이랄까. 주황 주황 느낌 가득한 유럽이랑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침부터 부지런한 예쁜이. 저 보라색 애착 공을 던지면 물어오긴 하는데 절대 돌려주지 않는다. 예삐는 전형적인 예쁜 강아지는 아닌데 뭐랄까, 너무 사랑스럽다. 앉을 때면 늘 몸 일부분은 사람에게 닿여야 하고 애교도 많다.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다가 조금이라도 내가 뒤쳐지면 늘 기다려 주던 작지만 속이 깊은 우리 예삐.
이 날은 잠시 외출했다가 집에서 내내 쉬었다. 심심해서 없는 솜씨로 끄적여 봤는데 예삐는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 연주 일하는 책상 앞에 붙여 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연주가 보내준 사진 속에 저 종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괜히 감동. 연주 성격상 그냥 별 신경 안 쓰고 놔둔 걸 텐데 말이다.
저녁엔 연주가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해서 한인마트에 다녀왔다. 마트가 생각보다 엄청 크고 한국 식재료들 거의 없는 게 없더라. 당연히 프라이팬에 구워 먹겠지 했는데, 창고에서 한국식 불판이랑 버너가 나와서 빵 터졌다. 집게랑 가위도 완전 한국 삼겹살집 아니냐고. 타지에서 먹으니 더 맛있네!
후식은 역시 달다구리 간식이지. 조용히 연주의 일상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던 나날들. 갑작스레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오히려 잔잔하고 조용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아. 다음 날 등산을 가기로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2019년 이야기를 꺼내어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