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만약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다면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여행 관련 콘텐츠 속에서 나의 글은 그 어떤 독특함도 차별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기로 했다. 내 인생에 조그만 커브를 만들어준 나의 여행.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니까.
뭐든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나는 나의 여행을 되도록 자주, 꺼내어 보기로 했다.
2017년 6월 태국행 티켓을 끊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그것이 내가 치앙마이를 선택한 이유였다. 또 짧은 비행시간과 부담 없는 물가 역시, 백수 신분이던 나에게 딱 맞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유럽에 푹 빠져있던 나는 동남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굉장히 덥다? 저렴하다? 정도였으니.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치앙마이까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저가항공, 버스, 기차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난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치앙마이행 야간열차. 야간열차, 뭔가 낭만적이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갈 때 야간열차를 못 타서 너무 아쉬웠는데 드디어 나의 로망을 이룰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몽글해졌다.
김해공항 늦은 저녁 비행 편으로 다음날 새벽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난 알아주는 겁쟁이라 그 시간에 숙소까지 혼자 이동은 절대 불가능하다. 검색해보니 공항에서 픽업해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한국 게스트하우스가 있단다. 하루는 거기서 묵고 다음날 치앙마이로 가기로 했다.
듣던 대로 태국의 날씨, 정말 장난 아니다. 하지만 대프리카에 살고 있는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6월의 치앙마이는 한국보다 더 선선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치앙마이 여행은 6월에 하시라 추천하고 싶다. 통상적으로 우기에 속하지만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시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6월 중순부터 2주가량 치앙마이에 있었는데 비는 이틀 정도, 스콜성으로 잠시 내렸으니까. 또 다른 이유로 7월부터 시작하는 여름 성수기를 피해 정말 저렴한 금액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다.
시암파라곤 지하에 짐을 맡겨두고 방콕 시내를 잠시 돌아봤다. 여기저기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와 복잡한 교통, 다소 시끄러운 방콕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기차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2주 동안 머물 치앙마이는 조금 더 느리고 고요한 곳이기를 바라면서. 역에 도착해 기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빵과 물을 샀다.
아 물론, 치앙마이행 야간기차를 선택할 땐 주의할 점이 있다. 출발 시간대가 여러 가지 있는데 기차의 피지컬(?)이라고 해야 하나 노후된 정도가 다르다. 난 일본에서 데려온 신식 기차에 타고 싶었기 때문에 6시 10분 열차로 예매했고 매우 만족했다. (2017년 기준)
출발 후, 조금 기다리다 보면 직원이 와서 좌석을 로봇 조립하듯 침대 형태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기차는 1층 베드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1층에 있는 사람 눈치가 엄청나게 보인다. 도미토리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말 아늑하다. 한껏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좋다.
무려 13시간을 달려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한다면 야간열차로 낭만을 얻고 체력을 잃었다. 일단 많이 흔들린다. 소음도 꽤 있어서 예민한 사람이라면 숙박비를 아낀다는 메리트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매우 만족했고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여행이라면 또 야간열차를 선택하겠다고 다짐했다.
첫 3일 치 숙소만 미리 예약해두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떠나왔다. 그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미리 숙소나 교통편을 저렴하게 예약해야 했고, 늘 바우처나 예약 내용을 프린트해 다녔었다. 또 넓은 대륙을 이동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치앙마이에서는 조금 느슨해지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느리고 나태한 나의 치앙마이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