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기 Jun 09. 2022

늘어짐과 로제파스타

6월 첫째주

sun | 5

집안에서 유일하게 외향적인 나는, 가족 중 유일하게 집에 안 붙어있으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처럼 모두 나가고 혼자가 되는 날도 있다. 이것저것 챙겨서 복잡한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부지런히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가라앉는다. 굳이 약속을 만들지 않고 집안 가득한 넉넉한 여유로움을 여름방학의 어느 날처럼 마음껏 누린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그대로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음악을 듣다가 졸았다. 아침, 점심을 모두 걸러도 배고픔을 잘 못 느끼기에 평소에는 사회적인(!) 식사 시간에 맞춰 먹지만 특별히 배고파질 때 끼니를 준비해 본다.


이상하게 혼자일 때는 제일 간단한 라면 같은 음식을 냄비째 차려먹게 된다. 어차피 한사람 몫인데 설거지까지 늘려야 할까. 그래도 조금 사치스럽게 요리도 하고 아끼는 그릇도 꺼낸다. 냉장고에 남은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볶아서 삶은 면과 로제 소스를 넣고 졸이듯 다시 볶는다. 우리 집에서 나만 먹는 수제 야채피클도 꺼내서 투명한 그릇에 담았다. 가족들과 먹는 요리에 습관이 되어있다 보니 2인분이나 나온다. 유독 천천히 씹어 먹으며 잠들어서 못다 본 영상을 킨다. 맛있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지만, 좋아하는 블랙페퍼 닭가슴살이랑 야채가 잘 어울려서 스스로 충분히 맛있다고 되내이며 먹었다. 아니, 연근이랑 당근의 흙맛도 진하고 이모가 주신 허브식초로 담아서 화하고 시큼한 이 피클에는 오늘도 아무도 손을 안 댔겠지. 생각하며 웃었다. 3월쯤에는 올해 작업 목표도 세우고 각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노션으로 정리했다. 분야별로 여러 계획을 세우다가 개인 부분에는 ‘나만을 위한 요리하기 : 2회 이상’을 적어두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벌써 반이나 달성한 셈이다. 다음에는 내가 어떤 요리를 해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저녁 약속을 마치고 들어온 동생이 유독 반갑다. 그릇에 잔뜩 남은 면이 아쉽다.

작가의 이전글 프리랜서와 베이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