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도 가져가고 인생도 가져가고
“저랑 데이트해 주실래요?”
“죄송해요, 결혼하는 거 아니면 연애는 안 해요.”
“그럼 결혼해요, 우리.”
부모님이 경기도 끝자락에 산장 오리고깃집을 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던 말씀처럼, 그분들은 어느새 그 꿈을 이루고 말았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늘 부모님께 "너무도 착한 딸"로만 살아왔다는 사실을.
막 좋은 직장에 취직해 출퇴근을 하던 내가 부모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받고, “가게가 바쁘니 당장 와서 도우라”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달려가야 했다.
스물셋의 나는 매일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을까. 뭐 하러 공부했고, 뭐 하러 대기업에 들어갔나 싶었다. 결국 이 산장 오리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있으니..
새벽 두 시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트위터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스키장 근처에 가게를 여셨었고, 그 덕에 나는 자연스럽게 스노보드를 배웠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마다 스키장을 찾으며, 자연의 눈 속에서 내 마음을 내려놓았다.
트위터에 스노보드 모임을 만들자마자 수백 명이 가입해 주었다.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모두가 첫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사진 한 장과 말투로 서로를 알아가며 가족 같은 무언가가 되어갔다.
첫 모임 날, 스키장이 열리자마자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심지어 해외에서 온 사람들까지 엄마의 산장 식당에 모여들었다.
나는 그날 유일하게 그날밤에만 허락 없이도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0대가 넘어서 통금이 저녁 7시라는 걸 그땐 그 누구도 몰랐겠지 , 그렇게 나는 모임을 통해 엄마에게는 손님을 불러오는 착한 딸, 나에게는 자유의 시작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모임엔 스카이 출신 친구들, 의사, 해외 유학생, 대기업 직원, 학생, 심지어 마술사까지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나를 모임의 리더로 인정해 주었고,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었다. 리더십이란 게 내 안에도 있었다니, 자신감을 느끼던 그 시절의 나는 세상 콧대 높았던 것 같다.
몇 번째 모임이 끝날 무렵, 마지막 코스에서 내려오던 중 나는 누군가와 부딪혀 함께 굴러 떨어졌다. 몇 분을 그렇게 눈 속에서 굴러내려 오며 마침내 멈췄을 때, 낯익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늘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던 남자였다. 모임 안에 20대 초반들과 달리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다들 그를 존경했고, 모임에서도 늘 카풀을 자처하던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날 사고를 계기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내 모든 스키 장비와 옷가지들이 그의 차 안에 남아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날 밤이 되어서였다.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기 무섭게 텅 빈 내 방을 둘러보다
"아... 내 옷.. 보드.."
얼결에 한 남자에게 마음이 팔려 정신을 놓을 만큼, 그에게 빠져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결국 전화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전화가 연결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저기… 나무꾼이세요? 제 옷까지 다 가져가게?”
말을 내뱉고 나서야 얼굴이 빨개져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웃음 섞인 다정한 목소리가 마음에 닿았다.
“다시 만나요. 제가 다시 갈게요.”
그 한마디가,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난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열심히 썸을 탔다
하루에 몇 시간씩 통화를 하고 자기 전까지 문자를 하고 트위터 안에선 비밀연애를 하듯 설레어했다
2번째 만남을 앞두고 그가 물었다
“저랑 만나실래요? 남자친구 있어요?”
“죄송해요, 결혼하는 거 아니면 연애는 안 해요.”
짧은 대화가 끝나고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음만남의 날자와 장소를 잡고
그날 나에게 와 말했다
“그럼 결혼해요, 우리.”
프러포즈를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종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만이 날 이 집에서 구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보다 따뜻했으며 이게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미쳤었었겠지 그렇게 그는 내 옷도 가져가고 인생도 가져가고
다 가져갔다 지금은 돈도 가져가고 집도 가져가고 꿈도 희망도 가져가게 해 준 그 남자
고마워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