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던 건 결혼이 아니라 탈출이었다.
세상에 던져졌다.
부모님의 모습으로만 평가받던 10살까지의 시기를 지나,
공부머리만으로 평가받던 18을 지났고,
겉모습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믿었던 20대 초반에 멈춰 있을 무렵,
내가 있는 곳이 내가 만들어갈 최고의 길이라 믿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고, 성별도 나이도 상관없는 사랑과 이별을 하며,
그때였기에 할 수 있었던 "내 감정을 쏟아붓기"의 시간들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공부는 잘했다. 내가 가진 게 얼굴뿐이 아니라고 믿었던 보잘것없는 자신감으로,
어디서든 예쁨 받던 시절, 나는 "죽을 때까지 젊고 예쁠 거야"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의 시선에 맞춰 내 모습을 꾸미고 사랑받았다.
그게 좋았다.
그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보낸 시간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을 통해서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내 20대는 남들의 기대에 맞춰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시간들이었다.
나를 자르고, 갉아내며, 억지로 만든 내 모습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더 사라져 갔다.
그리고 10년이 더 흐른 지금,
나는 아직도 내 진짜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약을 먹으며 잠이 드는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결혼이 내 삶의 '행복'이라고 믿으며, 외줄 타기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니면 난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이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님의 지나친 통제에 길들여진 그 모습 그대로 성인이 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었다.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가두고, 속박했던 감옥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찾고자 했던 행복, 내가 되기를 원했던 나의 모습은 그 속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삶의 방향을 잃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나를 보면서,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을 잃어갔다.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은 남의 시선이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나는 그 모든 감정을 깊이 눌러 삼키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두 눈을 감고 안정제를 삼키는 것뿐이라 믿으며,
그저 그 속에서 안식을 찾으려 했다.
성인이 되어도,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부모님의 그늘 아래,
20살 딸에게 영상통화를 100통이나 하던 엄마는 단 한 번의 반항도 하지 않던 나를
"착한 딸"이라 부르며 내 삶의 모든 틈을 채우는 숨 막히는 통제로 나를 움켜쥐었다.
결혼만이 내 탈출구라고 생각하며 매일 밤 울며 기도했던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나를,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었을까.
부모에게서의 탈출이 "결혼" 임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나에게 더 착한 "부모"가 되어줄 성인 남자를 찾은 것 같은 행복에, 그 무엇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는데,
그때는 그게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