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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도 이유가 있지요.

by Seulgilawn



정신없이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오랜만에 좀 한가한 날이다. 이래저래 소득 없이 자잘한 일들로 바쁜 나는 이런 여유가 오래되기를 바라지만 또 너무 여유로워지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지인에게 받은 생일선물을 3일째 뜯지 않았다. 오며 가며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아이들이 먼저 궁금해하다가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이내 그들도 그냥 그것이 원래 그 자리에 옛날부터 있던 것처럼 여겨졌는지 불투명한 선물상자는 이제 관심 밖이다. 이미 받을 때부터 내용물이 무엇인지 전달받았기 때문인가 오늘에서야 그것을 열어 보았다. 언제부턴가 소소한 살림살이들을 선물 받는다. 물론 구매할 때에는 완벽한 내 취향의 것들을 취사하지만 선물은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혹여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물건들도 있거나 멋진 선물을 고르는 상대의 안목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무엇이든 그저 감사하다. 얼마나 시간과 생각을 들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차라리 직접 나가서 고를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시간과 정신을 소비한다. 그렇게 해서 전달하거나 전달받는 것임을 알기에 후다닥 뜯기다 싫었다. 그래서 내가 3일이나 지난 뒤 선물상자의 리본을 풀어본 것은 여유로움 속에서 오롯이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꺼내보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생긴다. 이 글을 상대가 보지는 못 하겠지만 나 혼자 변명을 늘어뜨리며 3일씩이나 선물상자를 그대로 둔 사죄의 마음을 담아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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