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의 갑작스럽고 무리한 부탁을 듣고 이리저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겠지..."라고 이유가 없는 건 하나도 없다고 다독여가며 그 부탁을 해내고 있었다. 순간순간 화나고 속상한 마음이 아무리 구겨 넣어도 삐져나왔지만, 억지로 욱여넣으며 하나도 밀어냄 없이 받아들이고 행했다. 하지만 역시나 무릎을 딱 칠만한 사정은 없었고 정말 무리하고 억지스러운 부탁인 것을 상대의 입을 통해 알게 되고 화가 났다. 화남을 표현했다. 그제야 상대는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래도 화난 마음을 알아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기막힌 이치에 맞게 지내어진 관계가 있다. 어렴풋이 가끔 떠오르지만 연락에 닿기에는 항상 아슬아슬했던 관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서로를 다독이고 오랜만이기에 반갑고, 다정한 안부를 나누었다. 지인이 책을 쓰고 펴내게 되었단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이 났단다. 그렇다고 꼭 만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의 바쁜 마음과 생활들을 알기에 집 근처에 맡기고 가겠단다. 내가 어떠한 책을 읽고 떠오르는 대상이라니, 그 마저도 마냥 기쁘다. 연락마저도 반가운 사람의 고마운 마음과 정성에 따뜻했다.
셋.
회사 일로 바쁜 동네친구에게 물건을 전해줘야 했다. 퇴근도 늦고, 퇴근해서도 바쁜 동네친구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는 즉시 만나 전달하기로 하고 꼭 맞춰 만났다. 잠시 차에 타서 얼굴을 마주하자는 제안에 조수석에 올라타 조용한 시간을 잠시 나눴다. 고된 하루를 마쳤던 남편이 치킨을 배달시켜놓았다는 말을 듣고 주차장으로 내려왔었었다. 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오토바이 배달기사분이 우리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운 뒤 바삐 내린다. 친구는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네 것 아니냐고 반농담을 건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려 동, 호수를 물어보니 맞단다. 순간 20대 청년으로 보이는 배달기사분은 너무나 신나게 "오! 재수!!"를 외치며 먼저 아는 체를 하는 나에게 한 껏 상기된 목소리로 고맙다 한다. 나는 재수라는 말을 신나게 외쳤던 그 순간부터 집에 올 때까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단어를 직접 나에게 한 젊은이는 처음이었다. 한 껏 친구랑 깔깔깔 웃어대고 친구도 어서 집에 가라며 손짓했다.
여러 가지 감정들 덕분에 오르락내리락했던 내 마음은 연이은 에피소들 덕에 정신이 없었다. 남편과 마무리를 하며, 하루하루 지내는 이런 일상들이 있어서, 그래서 나는 사는 게 재밌다고 털어놓는다. 아직도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되지만, 끝내 한 없이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혹시 잠 못 들고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짧게 편지를 썼다. 언니와 내가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늦은 밤 편지함에 넣어두고, 정말 오늘 하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