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며 알게 된 것들 02. 예술, 창작에 대한 오해
꽤 오랫동안 ‘예술가’를 선망해 왔던 만큼이나
그에 따른 오해가 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그중 하나는 ‘예술가는 감정적인 직업’이라는 오해다.
꿈틀꿈틀 감정의 폭발을 담은 듯한
반고흐의 그림을 보거나
무언가에 취한 듯 물감을 흩뿌리며 그려낸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았을 때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와! 이 폭발하는 감정과 즉흥적인 표현들 좀 봐. 예술가는 정말 뜨거운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예술은 굉장히 ‘뜨거운’ 영역이라 생각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영역인 만큼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 역시 그러할 것이로 생각했었다.
대개 통통 튀는 개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적인 기질이 있다.’라고
꼬리표를 붙여주는 것도 그래서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막 창작자의 길로 발을 떼며 알게 된 점은,
예술은 뜨거운 감정의 폭발을 담을지라도
그 과정은 철저하게 감각에 대한
분석적인 작업이란 것이다.
뜨겁기보다 오히려 차가운 이성에 관한 영역이었다.
이전에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는
내게 감정 그 자체였다.
저 따뜻하고, 밝은 곳이 너무도 좋지만
‘나’란 존재가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외로움,
차가운 밤거리와 더 어울리는 나에 대한 연민,
그 와중에도 위로가 되는 별빛들..
관람자는 반 고흐가 꿈틀꿈틀 표현한 붓 자국 속에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적어도 이 그림을 기획하고, 그려내는 순간의 반 고흐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붓 터치 하나조차도
분석적으로 그려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의도하는 감정이 모두 느껴지도록 색을 배치하고,
가장 강조하고 싶은 곳에 빛을 위치시키고,
꿈틀거리는 듯한 돌바닥의 붓 터치 하나하나
모두 의도한 곳을 향하도록 했지만,
가장 집중되어야 할 곳의 시선을 뺏지 않도록 그려내려면
분석적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됐다.
즉흥의 끝이라 생각했던 잭슨 폴록의 작업도
‘분산’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기획된 작품임을 알게 됐다.
원근법처럼 그림이라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초점’이라는 것을 과감히 없애 버리고,
그 어떤 곳에도 초점이 잡히지 않도록
생각을 가득 담아 그려냈음을
그래서 미술사에 의미가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동안 ‘관람자’로만 있어서
창작자가 가져야 할 차가운 면을 미처 알지 못했다.
반 고흐가 ‘뜨겁게’ 느낀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를
‘차갑게’ 분석적으로 그려낸 그림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뜨거운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니…
안다고 느꼈던 것들이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는 순간은,,
‘세상이 이런 거였어?’ 싶어서 신기하고 참 재밌지만
곧이어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었어?’ 란 생각이 들어
좀 창피하기도 하다..
근데, 좀 창피하면 어쩔 건가 싶다.
누구나 갖고 있는 첫날이 나는 오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