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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Aug 17. 2017

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붙잡아 주었던 순간들

찰나의 즐거움, 잊을 수 없는 행복의 순간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 그 후의 일상>



병원 치료가 시급한 단계의 우울증 진단
아슬아슬했던 시간 동안 나를 지켜준 건,
때때로 찾아왔던 순간의 즐거움, 찰나의 행복.


어린이집 입소와 함께 시작된 제2의 육아기는 치유로 채워졌어요. 아이 없이 혼자 외출이 가능해지니 젓가락을 들지도 못할 만큼 망가진 손목을 돌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시에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그룹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달간 진행된 상담을 받으며 나의 정신 상태를 진단받을 수 있었는데 우울증 검사 결과가 심각했어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빨간불! 위험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  위태로운 수준이니 당장 병원 치료를 받으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나 우울증인가 봐. 나 우울증인 것 같아.’ 매일 우울증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그 의미와 심각성에 대해서는 무지했어요. 출산을 한 엄마들이라면 으레 겪는 어려움, 입 다물고 감내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만 여겼습니다.


‘그게 아니었구나. 아주 심각한 문제였구나. 이렇게 상담을 받으러 오고 일상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어요. 하루 종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그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를 더듬어보니 순간순간 찾아왔던 찰나의 즐거움, 잊을 수 없는 행복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출산 한 달 후, 1.5평 독방에 갇혀 밤샘 수유를 하며 “나는 젖소야 젖소! 젖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외쳐대던 저에게 그가 내민 작은 쇼핑백. “이게 뭐야?” 열어보니 빨간색 립스틱이 들어 있었어요.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젖먹이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겨두고 나섰던 둘만의 외출. 겨우 집 근처, 2시간 남짓의 짧은 외출이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나를 깨워주는 최고의 처치였습니다.




“내가 기가 막힌 빵집을 알아왔어! 차를 타고 좀 가긴 해야 하는데, 거기 빵이 아주 예술이래!” 밥보다 빵을 사랑하는 와이프를 위해 알아온 유명 베이커리를 향해 한 시간을 달려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맛본 그 빵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킁킁 한 번에 고단함이 사라지고, 쩝쩝 한 번에 황홀함이 가득 차는 그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선물! 이 기특한 녀석들은 바닥까지 떨어진 나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확실한 구원병이었어요. 




“매일 집에서 동요만 들으면 지겹지 않아? 내가 당신 귀를 힐링시켜줄게~ 자기한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 카시트에 앉아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는 부인에게 한 소절 한 소절 가사를 읊어주며 들려준 노래는 휘성의 '너라는 명작'


너무 예쁘다 니 눈 니 코 니 볼 입술 니 모든 게
너무 예쁘다 니 스타일 니 스마일 주변 사람 니 모든 게
너무 예쁘다 너라는 명작을 난 사랑하는 걸

아낌없이 숨김없이 (이 느낌을) 솔직히 말하면 너무 예쁘다 너
행복이 지나치면 세상이 달라 (check it out now)
하나 둘 셋 넷 다 셀 수도 없게 오 모든 것이 새로워
매일이 생일 같은 날 니 일이 내 일 같아
난 항상 바빠 늘 숨이 가빠 난 행복한 남자


처음부터 끝까지 오글거리는 가사로 가득한 이 노래, 나 혼자서는 절대로 들어보지 않았을 이 노래가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더해지니 왜 그렇게 울컥 가슴이 메어오던지요. 주책 맞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가슴속에 눌러 담았습니다. 변해버린 내 모습에 우울해질 때마다 꺼내 들었던 한 곡의 노래는 우르르 무너진 자존감을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손길이 되어주었어요.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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