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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Sep 15. 2017

숨겨진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는 방법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이해 한 잔 02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엄마들이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는 이유에는 ‘수면 부족’‘높은 불안감’도 있습니다. 저자는 꿈과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해요. 잠은 우리를 해방시켜주고, 우리 몸이 원기를 되찾게 함으로써 감정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돕는다고요. 잠은 매일 떠나는 작은 휴가이며 우리를 치료해주는 약이라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폭발하고 과도한 반응을 보이며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왜 우울증으로 고통받는지, 왜 자기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시죠? 잠을 자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을 고문하는 방법 중에 하나일 만큼 신체와 정신에 큰 영향을 미쳐요. 밤새 수유를 해야 하는 신생아기부터 잠투정이 잦아드는 유아기까지 대부분의 엄마들이 경험하는 수면 부족은 우리의 감정 조절 능력을 바닥까지 떨어트립니다. 내가 못 나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요하고 추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거예요.






‘불안’ 역시 피할 수 없는 기제로 작동합니다. 양육의 책임을 엄마에게 전가하고 엄마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문화는 엄마의 불안을 극대화시켜요.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온갖 정보를 검색하며 수집하지만 넘쳐나는 육아 이론들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 오랜 시간 내 몸에 자연스럽게 체득된 방식도, 충분히 고민한 끝에 형성된 단단한 철학도 아닌 전문가들의 조언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 곤혹스러움과 부담감만 얹어줍니다.


아이가 잠을 잘 자지 못 하는 것도, 변비에 걸린 것도, 몸무게가 늘지 않는 것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발을 동동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그때. 매일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나를 들볶았던 이유 역시 불안이었어요. 끝없이 할 일을 만들며 가만히 앉아 쉬지 못하는 나. 수없이 많은 규칙을 만들어 지키고, 정리 정돈에 집착하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모두가 높은 불안증을 겪는 사람들의 특징이자 나의 증상이었습니다.


“다했어? 그게 다한 거야? 청소는? 빨래는? 쉬겠다고? 네가 지금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내 마음속에 가득 찬 불안감은 악랄한 비판자를 데려왔어요. 온종일 나를 감시하며 비판하는 이 녀석은 나의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언제나 불가능한 수준의 기준을 세워 나를 닦달했고, 나는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언제나 실패자가 될 뿐이었습니다. 내가 나의 잔인한 목소리에 한없이 휘둘리고 있었던 거예요.




완벽함을 추구하며 불안했던 이유


나는 왜 이렇게 완벽을 추구할까? 나는 왜 완벽주의자가 되었을까? 


‘완벽주의자가 되어 불안해하게 된 동기를 찾아보라’는 저자의 말에 나의 부모를 다시 돌아봤어요. 내가 처했던 환경, 내가 겪었던 사건, 내가 들었던 수많은 말과 내가 받았던 기대… 더없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다란 부모님 밑에서 힘들었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치른 첫 시험, 저는 평균 90점을 받지 못했는데 제 성적을 보고 너무 실망하신 아빠는 한 달 동안 제 얼굴조차 제대로 봐주지 않으셨어요. 14살의 나는 다음 시험에는 어떻게든 90점을 넘겠다며 시험 두 달 전부터 매일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아도 등수가 모자랐고,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 석차가 부족했어요. 처음으로 전교 4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신이 나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간 날에는 “얘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1등도 아니구먼.”이란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4시간을 자며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목표했던 sky진학에 실패했던 일. 내가 그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렸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과 한 달 내내 축 처져있던 아빠의 어깨가 떠올랐습니다.


‘아. 나는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기대를 낮추는 방법을,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완벽을 추구하던 내 모습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아이를 마주했습니다.





행복한 나를 위한 첫걸음 : 내 마음 들여다 보기 + 친절한 내가 되기



나를 돌아보는 것, 나의 감정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뗄 수 있어요. 절망과 좌절, 수치심과 우울함이 몰아칠 때에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자극이 무엇인지를 찾아 분리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제는 “국도 없이 밥을 먹이니? 반찬이 이거밖에 없니?” 물으며 부지런한 가사 노동을 강요하는 친정어머니의 말에 사로잡히지 않아요. “요즘 일하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니? 너도 네 일을 해야지.” 말하며 자아실현을 권하는 친정아버지의 말에서, “혼자 벌어서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잖니. 여자도 같이 벌어야지.” 하고 맞벌이를 강조하는 시어머니의 말에서 매끄럽게 빠져나와 당당하게 생각합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면 어때? 지금 당장 내 일을 하지 못 하면 어때? 그까짓 돈 좀 못 벌면 어때? 내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게 아니잖아. 내 탓이 아니잖아. 이 모든 걸 실현하는 게 불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잖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잖아.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발버둥 칠 필요 없어. 나는 잘 하고 있어.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지금 이대로 괜찮아.’ 나에게 친절한 나, 나에게 관대한 나, 나에게 다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고 있답니다.


물론 새로 태어난 나는 아직 너무 어려 세심한 보호가 필요해요. 작고 여린 나를 위해 준비한 건 나만의 공간! 에너지에 민감한 감정이입형은 반드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당신을 괴롭히는 뱀파이어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적극 수용했어요. 당신은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를 추진한 신랑에게 감사하며, 더 이상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행복한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나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 마음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할 시간을 갖는 건 정당하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야.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고, 그게 양육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야.’


나의 이런 생각과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이고 한심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세상의 고정관념과 사회의 압력에 순응하면서는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없어요. ‘엄마’라는 보편성을 버리기! ‘해야 한다’는 강요에서 벗어나기! 아이와 나의 관계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만의 특수한 관계이니 우리에게 맞는 삶과 규칙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고 실천합니다.


‘내가 이렇게 혼자 있어도 되나? 쉬어도 되나?’ 밀려오는 불안과 죄책감에 뭘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시간에는 사람들과의 유대, 따뜻한 모임을 채워 넣었어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립이 나의 우울증을 키워왔다는 알게 되었거든요. 마음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누군가, 지치고 허전한 마음을 포근하게 채워주는 어딘가를 찾기 시작했고, 도서관에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8주간의 행복 찾기 모임을 시작으로 그림책 강의와 책모임, 인문학 모임을 함께 하며 나의 숨은 상처와 내가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갔습니다.





우울증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방법



한 걸음 한 걸음의 노력이 모여 우울증의 바다 위로 떠오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종종, 예고 없이 갑작스레 중심을 잃고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습니다. 거기는 여전히 차갑고 어둡지만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한 채 한없이 가라앉지는 않아요. 깊이- 깊이-- 더 깊이 가라앉기 전에 물 위로 올라오는 법을 배웠거든요.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에 맞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햇빛을 쐬고, 탁 트인 바깥공기를 마시고, 몸을 움직이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 눈물을 흘리는 것 또한 우울한 마음을 없앨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들과 나눈 눈물은 특히 강력한 치료제였답니다. 그림책 모임을 하던 중 사람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창피한 경험을 했는데, 부끄럽고 민망한 감정은 순간일 뿐! 내 안에 쌓여있던 절망과 우울을 모두 털어버린 듯, 진한 상쾌함만 남더라고요.


<감정의 자유>에서도 눈물의 힘을 강조하는데, 우는 것은 아주 건강한 행위로 우울함과 부정성, 절망을 씻어낸다고 하니 눈물은 참지 말고 그때그때 시원~하게 터트려 주기로 해요.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해왔던 지난날과는 과감하게 이별하고, 나의 감정을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보며 나의 하루를 더욱 풍요롭게 가꿔가려 노력합니다.





숨겨진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는 방법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지나온 삶의 모든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지요? 그 상처의 아픔을 오롯이 느끼고 제대로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걸 실천하려고 하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해요. 나를 돌아보고 내 안의 나를 찾는다는 말처럼 뜬구름 같은 이야기도 없으니까요.


새삼스럽게 나를 어떻게 찾고 돌아보라는 건지…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과제로 느껴지는 이 난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준 열쇠가 바로 책이었어요.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의 답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과 감정, 지난날의 상처를 보듬어갈 수 있었답니다.


엄마라면 누구나 참기 힘든 아이의 특정 행동이 있을 거예요. 다른 엄마에게는 별 것 아닌 사소한 행동이 나에게는 엄청난 화를 불러오는 최악의 행동일 수 있지요. 양육자마다 아이에게 관대한 부분과 엄격한 부분이 다른 것처럼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는 육아 아킬레스건도 모두 제각각인데요,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하게 화가 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주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 그 감정 아래 숨어있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길 바라요.


분명 그 안에는 오랜 시간 방치되고 외면해왔던 어떤 상처가 있을 거예요. 그걸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들여다보기 힘든 것이 나의 내면이니 책 읽기라는 묘책을 사용해보세요. 독서의 여정은 저에게 감정의 자유와 치유, 더 없는 위로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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