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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May 25. 2017

산후 비만과 다이어트, 요요와 폭식의 끝

깨달음 한 잔 (3)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몸뚱이가 꼴 보기 싫을 때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깨달음 한 잔.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내 몸뚱이가 꼴 보기 싫을 때

(3)




(2) 편에서 이어집니다.






바디이미지로 인한 수치심


책을 읽는 내내 모성만큼이나 공감했던 주제는 '바디이미지'로 인한 수치심이었어요. 바디이미지란 '나 자신이 나의 몸에 대해 갖는 생각과 느낌’인데요, 여러분은 어떤 바디이미지를 갖고 계시나요? 지금의 내 몸에 만족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나요? 애석하게도 저는 언제나 통통한 내 몸매가 부끄러웠어요. 늘 극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다이어트에 시달려 왔습니다.


날씬하지 않은 몸매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건 사춘기가 시작되었던 중2 무렵. 중2병의 시작은 외모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다이어트로 연결되었어요. 오로지 살 빼기에 집중하며 사춘기 시절을 보냈지만 수험생활 3년 만에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니 저에게 남은 건 견딜 수 없는 허탈함과 70kg가 넘는 몸무게뿐이었지요. 대학생활은 다이어트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안 해 본 다이어트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몸무게는 늘 만족스럽지 않았고 돌아오는 건 극심한 강박증과 폭식증뿐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혐오가 절정으로 차오를 무렵, 자기보다 10kg는 더 나가는 여자에게 '지금 이대로 너무 예쁘다. 뺄 살이 어디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말하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시작했고, 그의 집요한 설득과 감언이설에 넘어가 무리한 식이조절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덩치만 컸지 늘 골골대며 병치레가 잦은 허약 체질 극복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그와 6년을 만나면서 1년에 1kg씩 도통 확인하기도 힘든 속도로 살을 빠졌어요. 결혼 준비를 하는 1년 동안 다시 식이조절을 시작해 6kg를 감량한 결과 몰라보게 날씬해진 몸으로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 3주 만에 임신을 하면서 제 몸은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투실투실 뚱뚱한 몸에 이미 익숙한 저였지만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가슴은 끝없이 거대해지고, 허벅지와 엉덩이는 나날이 두꺼워지더니, 몸무게는 또 어찌나 올라가는지!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출산 후에는 앙증맞던 가슴이 젖소의 젖통으로 변신했어요. 내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정말 내 몸이 맞나 의심하게 하더니, 1년간의 수유가 끝난 뒤에는 쭈글쭈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매달려 있더라고요. 옆구리와 배에는 보기 흉한 튼 살 자국이 가득했고, 배꼽 아래에는 볼 때마다 외면하고 싶은 기다란 칼자국이 선명한 흉터로 남아 두둑한 뱃살을 울퉁불퉁 요철의 뱃살로 업그레이드해주었습니다.





TV 속 엄마들은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여전히 가녀린 몸매로 날씬한 S라인을 뽐내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망측한 상태였어요. 꼴도 보기 싫은 이 몸뚱이를 벗어나고 싶어 여러 번 다이어트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잠도 잘 수 없는 독박 육아의 늪에서 다이어트는 언제나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할 뿐이었어요. 


연이은 실패와 우울증은 절식과 폭식이라는 식이장애를 불러왔고,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다 먹고도 한 봉지 가득히 사온 만 원어치의 빵과 서너 봉지의 과자를 끝없이 밀어 넣는 내 모습을 매일 마주해야 했어요. 아무리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심각한 폭식을 멈출 수 없었고, ‘이게 정말 인간의 모습인가, 사람의 몸을 하고 이렇게 무식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가.’ 나 자신에 대한 환멸과 혐오가 경계선을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신랑은 저에게 거금을 건네주었습니다.


이걸로 일대일 PT를 받든, 다이어트 컨설팅을 받든, 사고 싶은 물건을 사든, 무엇이든 우울하고 힘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도해보라며 독려해준 신랑. 그 따뜻한 배려와 응원에 힘입어 저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고가의 다이어트 컨설팅을 받았고, 한 달만에 8kg를 감량해 결혼식 날보다도 날씬한 몸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체중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여전히 추했다는 거예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임신 전보다 날씬해졌다지만 여전히 몸무게는 50kg 중반 대였으니. 44 사이즈도 헐렁한 연예인 몸매, 이리저리 수정하고 보정한 포토샵 몸매에 익숙해진 눈에 겨우 그런 몸이 예뻐 보일 리가요. 울퉁불퉁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 몸은 여전히 수치심을 유발할 뿐이었습니다. 


살을 빼기 전에는 살만 빼면 모든 게 달라지고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한숨 쉬는 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한순간에 끝이 나고, 무한한 행복과 만족감만 가득할 줄 알았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어요.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내 눈에 익숙한 화면 속 그들의 모습과 언제나 판이한 차이를 보였고, 내가 내 몸을 들여다보며 자신감을 느낄 만큼의 몸매가 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의 저자는 세상이 만들어낸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해요.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나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나의 수치심을 촉발하고 부채질하는 사회와 공동체의 기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제안합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고요. 


외모에 대한 사회와 공동체의 기대는 무엇인가?
왜 이런 기대가 존재하는가?
이런 기대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런 기대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가?
이런 기대들로 수혜를 입는 이들은 누구인가?  (p.131)


수치심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방법 둘  :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미용 • 다이어트 • 화장품 • 성형업계는 매년 엄청난 돈을 벌어들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스스로를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끼는 덕분에 말이죠. 외모가 여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화장이나 다이어트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가 된 것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려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결과물입니다. 이는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에요. 특정한 의도 속에서 만들어진 ‘강요된 기대’이지요. 


왜 우리는 모두 TV 속 연예인처럼 날씬해져야 할까요? 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단 하나여야만 하나요? 왜 여자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부정하고 극복해내야만 하나요? 


우리에게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움을 부추기고 강요하는 그들의 기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수치심에서 좀 더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맥락을 이해하는 건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리며 ‘나만 이렇게 형편없다’는 부당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지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다이어트를 시작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저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20년 넘게 시달려왔던 ‘바디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저는 더 이상 살찐 내 모습을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살을 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늘 조급한 마음에 시달렸어요. ‘살찐 나’는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한심하고 흉측한 상태라고 여기며 감추고, 숨기고, 외면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살이 쪘거나 빠졌다고 해서 나의 존재 가치가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뚱뚱하든 날씬하든 나는 언제나 소중하고 값진 존재라는 것,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여기려 노력합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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