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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May 25. 2017

손 내밀고, 말하고, 자유로워지기

깨달음 한 잔 (4)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몸뚱이가 꼴 보기 싫을 때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깨달음 한 잔.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내 몸뚱이가 꼴 보기 싫을 때

(4)



(3) 편에서 이어집니다.


수치심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방법 셋, 넷 : 손을 내밀고, 말하기 


산후 다이어트에 성공한 후 저에게 남은 건 엄청난 체력 저하와 잦은 병치레, 생리 불순과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였어요. 날씬해진 몸에 대한 만족감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상쇄시킬 만큼의 달콤함은 선사하지 못했죠. 걸핏하면 짜증을 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 철저하게 제한했던 섭취량을 늘리기 시작했고, 극복한 줄 알았던 폭식증이 다시 찾아오면서 몸무게는 슬금슬금 다시 올라갔습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요요!! 요요의 덫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는 다이어트 전보다 더 큰 절망에 빠져 있어야 할 거예요. 살을 빼는데 큰돈을 쓰고도 또다시 살이 쪄 퉁퉁한 몸이 되었으니, '아.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가.' 자책하고 절망하기 딱 좋은 상태이죠. 



하지만 전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마음으로 뚱뚱한 내 몸을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에게 끝없이 비정상적으로 날씬한 몸을 강요하는 게 누구인지, 그들이 왜 왜곡된 바디이미지를 앞세워 나의 수치심을 자극하는지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여성의 아름다운 몸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소리 높이는 한 권 한 권의 책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또 말하기가 선사하는 엄청난 마법을 생생하게 경험했으니, 평생을 꽁꽁 감춰왔던 나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만 천하에 공개하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를 얻었습니다. 




제 몸무게는 62kg입니다.

저는 블로그에 제 몸무게를 공개했어요. 단 한 번도 입을 열어 말해본 적 없는 몸무게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처음으로 소리 내어 이야기했는데, 입을 열어 내뱉고 나니 세상에나. 이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왜? 62kg가 왜? 여자는 다 48kg 여야 하나? 어떻게 160cm의 미용 체중이 47kg인 거야? 이성이 좋아하는 몸무게가 47kg라고 정해놓은 게 대체 누구야? 왜 모두가 삐쩍 마른 몸매가 되어야 하지?’ 


저는 이제 제 몸무게가 부끄럽지 않아요. 160cm의 키에 60kg가 넘는 통통한 몸이지만, 더 이상 내 몸이 밉지 않습니다.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아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다이어트! ‘살은 안 빠져도 좋다, 잘못된 다이어트가 불러온 식이장애를 극복하자, 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자’ 다짐하며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날씬하든 통통하든 몸매에 대한 세상의 기대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우리 모두는 ‘모성’과 ‘바디이미지’라는 거미줄에 칭칭 감겨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의 저자는 제안합니다. 주변으로 손을 뻗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입을 열어 이야기하며 자유로워지라고요. 


"원래 용기는 '진심에서 우러나 자기 생각을 말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는 변했고, 현재는 주로 영웅적이고 용감한 행동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용기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필요한 내면의 힘과 진실함'을 아우르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진심에서 우러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저는 말하기의 힘을 체험했어요. 이건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커다란 힘이었지요. 그 힘은 수치심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기에만 급급했던 저를 구원해주었습니다. 


수치심은 우리가 속한 사회 문화 속에서 발생해요. 누가 인기가 있고 누가 인기가 없는지, 어떤 몸매가 ‘완벽한’ 몸매인지,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해야 한다’는 모두 우리의 문화 속에서 강제됩니다. 수치심뿐만이 아니에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나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생겨납니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한다면 기쁨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아요. 기쁨은 다른 이 때문에 삶이 충만해질 때, 슬픔은 다른 이 때문에 삶이 훼손될 때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과 유대감을 갈망합니다. 


그 안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감정들은 우리의 삶을 디자인해요. 지금 이대로 충만한 오늘을 살 것인가, 죽지 못해 괴로운 오늘을 살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오늘의 내 모습을 결정합니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거예요. 


수치심에 사로잡혀 나를 비하하기 바빴던 어제는 이제 안녕!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감정의 실체도 모른 채 정신없이 끌려다니는 실수는 더 이상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합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고찰하는 책, 감정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도와주는 한 권 한 권의 책과 함께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의 조각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인지에 대해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용기’를 갖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멋지고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읽기와 생각하기, 말하기를 통해 조금 더 자유로운 우리, 보다 더 행복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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