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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May 28. 2017

내가 둘째를 낳지 않는 이유

위로 한 잔 (1) 나만 찾는 아이가 숨 막히고 도망치고 싶을 때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위로 한 잔.
나만 찾는 아이가 숨 막히고 도망치고 싶을 때

(1)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어요.



득도를 하고 싶다면 아이를 키워야 돼.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혼자 하는 수양은 입문 코스지.
제대로 하려면 집 안에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니까!



육아에 지칠 때마다 신랑에게 열변을 토하며 내뱉었던 넋두리랍니다. 저에게 육아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 어떤 일보다 힘겨운 일인데, 나라는 인간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어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은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 줄 알았건만! 작고 순수한 이 생명체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나의 민낯을 대면하게 만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나? 내 인내심이 고작 이만큼이었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믿어왔던 내 모습이 사실은 허울 좋은 포장에 불과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일이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수시로 질문이 날아들어요. "애가 얘 하나예요? 둘째는 안 가져요? 더 늦기 전에 얼른 하나 더 낳아야지. 하나는 외로워서 못 써요." 뭐라고 대답을 하든 '무조건 낳아라, 얼른 낳아라, 꼭 낳아라'로 마무리되는 걸 알기에 이제는 그냥 웃으며 "네. 그래야지요." 대답하지만 저는 둘째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요. 세상에 더 없는 축복이고 선물이라는 걸 알지만, 막상 낳고 나면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할 것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두 번째 출산이란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과 공포를 가져오는 일입니다. 절대 피하고 싶은 일,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일이거든요.


뭐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신랑에게는 있는 그대로 말해요. "나는 엄마 체질이 아니야. 엄마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하루 종일 나만 찾으며 매달리는 게 부담스럽고 숨 막힐 때가 많아. 그럴 땐 정말 도망가 버리고 싶고 이 자리에서 딱 없어져 버렸으면 싶거든. 그냥 죽고 싶었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 겨우 숨 돌리며 살고 있는데… 그걸 또 하라고? 또 해야 한다고? 난 못 해. 절대 못 해. 난 못 해 자기야. 난 못 해. 안 하는 게 아니고 정말 못 하는 거야."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 속마음이지만, 둘째 계획을 반복해서 물으며 채근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진심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럼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해요. "세상에 엄마 노릇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 어디 있니? 다 참고 버티면서 하는 거야. 힘들지만 그만큼 또 예쁘고 소중하잖아. 그거 보면서 힘든 건 또 잊어버리고 그러는 거지. 뭐 나는 엄마가 적성에 맞아서 셋을 낳아 키우겠니? 일단 낳으면 그냥 또 하게 돼있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낳아봐. 그럼 내가 왜 진작에 둘을 안 낳을까 후회가 밀려올걸?"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과 절망감이 폭풍처럼 몰려왔어요. 다른 엄마들은 아무렇지 않게 참고 버티는 일을 왜 나만 이렇게 힘들다, 죽겠다 할까? 왜 나는 그게 안 될까? 왜 나는 둘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를 느낄까? 나는 인내심도, 아이를 사랑할 능력도 없는 사람인 걸까? 왜 나는 이 모양이지?’







자괴감과 절망감의 끝은 언제나 수치심이었어요. 나 자신을 향한 실망과 환멸, 경멸. 이건 정말이지 벗어나기 힘든 늪이었습니다. 물론 수치심의 실체를 알려준 책을 만난 덕분에 전처럼 극심한 우울의 나락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의 두 다리는 수치심의 늪 속에 굳게 박혀 있곤 했는데, 한 권 한 권의 책이 저에게 이야기했답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넌 너 자신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구나.  바보처럼 거기 그렇게 빠지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공격적이다. 가식적이다. 거칠다. 거만하다. 고리타분하다. 곧다. 겸손하다. 걱정이 없다. 까다롭다. 개방적이다. 낙천적이다. 낭만적이다. 낯을 가린다. 느긋하다. 냉정하다. 도전적이다. 단호하다. 덤벙거린다. 드세다. 당당하다. 과묵하다. 답답하다. 멋대로다. 불안하다. 부관적이다. 변덕스럽다. 비사교적이다. 밝다. 방정맞다. 불 같다. 반듯하다. 사악하다. 산만하다. 생각이 깊다. 사교적이다.  사려 깊다. 선하다. 섬세하다. 소심하다. 솔직하다. 순진하다. 엉뚱하다. 억세다. 온화하다. 올바르다. 옹졸하다. 익살스럽다. 인자하다. 예민하다. 정직하다. 자기중심적이다. 주도적이다. 자유롭다. 조용하다. 적극적이다. 주의 깊다. 차갑다. 착하다. 충동적이다. 철두철미하다. 털털하다. 평온하다. 호탕하다.


여기 인간의 다양한 성격이 있어요. 나에게 해당하는 것을 골라 보시겠어요? 그중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를 딱 하나만 골라 보라면, 무얼 선택하시겠어요?


아니 어떻게 딱 하나를 고르냐고,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단 하나의 단어를 골랐으니 바로 [예민하다]랍니다. 어릴 때부터 ‘김슬기’란 이름 대신 ‘김별나’로 불리며 남다른 예민함을 인정받은 사람이거든요.







별나도 별나도 이렇게 별나냐는 평가를 듣곤 했던 저는 까다로운 기질과 식성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어요. 자라서는 치즈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며 피자를 못 시켜먹게 하는 소녀가 되었고, 싫어하는 것이 수천 개도 넘는 까칠한 여자를 거쳐 “바디샴푸 두 번 짜서 샤워했지?! 냄새가 너무 진해서 숨 막히잖아!” 구박하는 부인이 되었습니다.


늘 유별나고 까다로운 저는 별 거 아닌 일에도 불평을 늘어놓는 투덜이의 전형이었는데, 맙소사! 이게 내가 인내심이 부족하고 못돼 처먹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서, 너무 활발하게 돌아가는 두뇌를 가진 ‘똑똑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이상한 책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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