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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May 28. 2017

사람들의 판단 속에서 비틀어진 나

위로 한 잔 (2) 나만 찾는 아이가 숨 막히고 도망치고 싶을 때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위로 한 잔.
나만 찾는 아이가 숨 막히고 도망치고 싶을 때

(2)





(1) 편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 매사에 날카롭게 반응해 유독 비판적인 사람으로 통하는 사람, 사소한 것 하나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surefficience mentale, 정신적 과잉 활동인으로 명명하며 이들이 지닌 특징을 알려주는데, “어머 어머! 맞아요! 맞아요! 제가 그래요!!!” 용한 점쟁이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는 사람처럼 끝없이 공감하며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정신적 과잉 행동인의 특징]

- 남들보다 예민한 오감으로 불편함을 자주 느낀다.
-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 수면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잠을 줄이려 한다.
- 완벽함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을 몰아친다.
- 위계질서를 존중하지 않아 윗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멈추지 않는 두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해요. 본인들 스스로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타고난 영재성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죠. 정신적 과잉 행동인의 우수한 두뇌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될 때가 더 많은데, 그들과 다른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예민한 오감은 ‘유별나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불러오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며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은 ‘강박관념이 있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인지됩니다. 상대의 지위보다 실력과 능력을 중시하는 성향은 ‘예의가 없고 되바라진 놈’이라는 꼬리표로 돌아오니…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리고, 낮은 자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이들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아요. 많은 경우 우리는 타인의 성격에 대해 ‘좋다-나쁘다’ 차원의 판단을 먼저 하고, 눈 앞에 보이는 행동을 나의 기준에서 평가합니다. 그리고 아주 쉽게 이야기해요. “쟤는 너무 이기적이야.”, “걔는 어쩜 그렇게 게으르니?”, “저렇게 산만해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어?”, “세상에서 지가 제일 잘난 줄 안다니까?” 이런 말들은 이제 겨우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향해서도 쏟아져요.


낯가림이 심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스킨십을 꺼리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이야기합니다. “넌 어른들한테 인사도 할 줄 모르니?”, “어우, 새침데기.”, “너 되게 비싸게 군다. 완전 깍쟁이네.” 어른인 저는 이 모든 말들이 조금의 악의도 없는 말이라는 걸 알아요.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한마디라도 더 말을 건네 보고 싶어서 하는 관심의 표현이라는 걸 잘 알지요.


하지만 아이도 그럴까요? 여섯 살의 작은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고 낯선 사람과 환경에 대한 경계심이 많다’는 자신의 성격과 ‘어른들에게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새침데기, 깍쟁이’라는 평가를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별생각 없이 내뱉은 판단과 평가의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 말들이 쏟아내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빠지지 않고 자기 긍정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과연 그런 힘이 존재할까요?


태어날 때부터 초예민 베이비로 자기주장이 뚜렷했던 저에게는 ‘불여시’라는 말이 날아왔어요. “어우, 여시 여시 불여시. 아주 보통이 아니라니까.” 비난과 질책보다는 애정과 감탄이 담긴 말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고, 어른들이 쉽게 던진 말들은 벗어날 수 없는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성장 과정 내내 나를 향한 평가와 판단들이 더해졌고, 이제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나 자신을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 신경 쓰는 게 너무 많아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 모든 생각 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한껏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 맞아? 그게 진짜 너야?


의심 없이 믿어왔던 저에게 물음표를 던져준 건 한 권의 책이었어요. ‘네가 생각하는 네 모습이 진짜 맞아? 네가 하고 있는 평가가 제대로 된 게 맞아? 남들과 다른 네 모습을 정확하게 알고 있니? 네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분명히 알고 있는 거야?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에 휩쓸려버린 건 아니니? 끝없이 쏟아지는 판단 속에서 제멋대로 일그러지고 왜곡된 생각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야?’



한 권의 책이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지독하고 유난스러운 불여시가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에요. 동의하게 어렵겠지만 당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당신의 두뇌 활동입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보다 분명히 머리가 좋은 편이고, 이건 매우 객관적인 진단입니다. 당신의 그런 특성은 우수한 두뇌에서 기인한 것으로, 당신은 80%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여기 당신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세계 곳곳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요. 신기하죠?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깊은 위로가 밀려오죠? 자, 이제 내 손을 잡아봐요. 내가 도와줄게요. 우리 함께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키워봐요. 우리의 ‘유별남’은 ‘특별함’이 될 수 있어요. 내가 몇 가지 생존 전략을 들고 왔답니다.”







이런 책을 만나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아요.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도대체 어떻게 살 뻔했나!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하늘에 감사하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 세상에 이보다 멋진 선물이 있을까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수많은 평가와 판단의 재물이 돼요. 대다수의 말들은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을 만들어 버리고, 우리는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 기회를 잃어갑니다. 내가 나라서 너보다 나를 모르고, 내가 나라서 너보다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 책 읽기가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요?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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