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초 VS 공립초 선택 그 후, 초등 입학을 앞둔 너에게 쓰는 편지
어느 날 네가 내게 "엄마, 왜 이 학교에 나를 보냈어?" 묻는다면..
초등 입학을 앞둔 너에게 쓰는 편지
바윤아, 어제 엄마가 네게 말해준 대로
내년에 바윤이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우리집 앞의 학교에 가기로 했어.
우리가 계속 고민했던 또 다른 학교 -
우리 같이 가서 합격공을 뽑고 왔던 그 학교는 이제 빠이,
아빠가 입학 거부 의사를 전달하고 왔는데,
조금 더 크고 자란 네가 그때 왜 그 학교가 아닌
이 학교에 나를 보냈냐 물으면 어떡하나,
언젠가 너에게 오늘 우리가 내린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어.
네가 이 글을 언제 볼 수 있을지,
너에게 보여줄 일이 정말 생길지 말지도 알 수 없지만
그냥 지금 내 마음을, 우리의 생각을,
2018년 겨울의 이야기를 남겨놓고 싶어 글을 써.
이 글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두면 좋을지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말이야_
보름 뒤면 8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너는 요즘 부쩍 엄마에게 묻곤 해.
"엄마, 새로운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까?"
"엄마,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안그래도 새로운 학교, 낯선 환경, 처음 보는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큰 너에게
학교 선택에 대한 고민과 불안까지 전해준 것 같아 참 미안해지는 요즘이지만..
엄마 아빠는 너에 대한 일이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보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고,
무엇을 택하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애를 써보자고 입을 모아 실천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이렇게 두 개의 학교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된 거야.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거든.
그게 너에 대한 일이라면 말이야.
하도 여러 번, 숱하게 이야기를 해서 7살의 너도 달달 외우고 있는 1번, 2번 학교의 특징을
지금의 너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우리가 같이 공을 뽑고 왔던 그 1번 학교는 좋은 학교야.
많은 엄마들이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이기도 하고.
시설도, 교육과정도, 다양한 활동에, 체험에,
우리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야기했거든.
"우와, 학교가 정말 좋긴 좋다! 멋있어!
보내고 싶게 생겼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말이야,
그 학교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그 학교를 대표하는 교장 선생님의 첫마디가
"내년도 방과 후 영어교육의 가능 여부를 제일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인 걸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2018년의 가을까지 여자아이들의 교복이 치마만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충격적이었어.
여자는 바지를 입을 수 없다는 교칙에 맞서 싸워야 했던 게 무려 20년 전,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인데…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두 번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이렇게 변한 게 없구나, 새삼 놀라웠단다.
이건 이 학교나 저 학교나 모두 마찬가지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손을 잡고 들어갔던 1번 학교의 교실,
거기서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하니?
엄마는 네가 당연히 엄마와 떨어져 있기를 거부하고 나를 따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얼마나 의젓하게 "응.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잘 갔다 와~" 말했는지.
나는 그런 네가 그저 신기하고 기특해서 울컥울컥 감사하고 행복했지만
네 얼굴과 입학원서의 사진을 확인한 선생님이
네 손으로 직접 추첨공을 넣도록 시키며 했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한단다.
"꼭 뽑히게 해 주세요. 합격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서 넣으렴. 뽑혀서 이 학교로 올 수 있게~"
그게 뭔지도 모르고 따라온 너는 추첨 장소로 이동하는 나에게 "엄마, 꼭 합격 뽑아 와." 말했고, 엄마는 생각했어.
'당첨자 수는 정해져 있는데, 당첨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마음은 그럼 어떻게 하지?'
우리는 다행히 당첨자 명단에 들어갔지만 바윤아,
그날 대기번호를 받고 먼저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다른 친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혹시라도 내가 기도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불합격이 되었다고 자책하고 실망하진 않았을까?
합격이 되었다는 엄마 말에 기뻐하는 네 얼굴을 보면서 바윤아,
엄마는 그날 우리가 운이 좋은 다수에 들었다는 사실의 기쁨보다 혹시라도 다쳤을지 모를 아이들의 마음이 더 불안하고 서글프더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합격=입학'이라 생각하고 네게 축하를 마구 보내주셨지만
사실 아빠 엄마에게 사립 초등학교 합격은 고민의 시작이었단다.
입학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학교를 두고 하는 고민은 의미가 없으니까_
입학 허가증을 받고 난 뒤에야 네가 진학할 학교를 두고 뜨겁게 토론했고,
우리는 네가 유치원에 가 있는 사이 우리집 앞의 2번 학교에도 다녀왔어.
네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선생님과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상담을 받아봐야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말이야.
너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집 앞의 2번 학교는 장점이 많은 곳이었어.
한 반의 학생 수가 적어서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을 수 있고,
학교 안의 공간이 넓어 다양한 특성화 교실과 체육관 시설도 갖추고 있어.
아니 그렇게 좋은 학교를 두고 왜 굳이 다른 학교에 지원을 했냐 묻는다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단점이 바로 '소문이 좋지 않은 학교'라는 것인데..
엄마들이 주소지를 이전해서라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1) 빌라 사는 아이들이 많다,
2) 특수학습이 있는 장애통합 학교다,
에 있었단다.
"나는 바윤이가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환경에서 자랐으면 좋겠어."
"사실 모든 학교가 장애통합 학교로 운영이 되어야 맞지.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편하게 다닐 권리가 있잖아."
사실 바윤아, 네가 갈 그 2번 학교는 아빠도, 엄마도,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네 할아버지께서도 다니신 학교이고,
아빠 엄마가 다닐 때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과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를 했어.
그때도 그걸 탐탁지 않아 하는 어른들이 많았지만 우린 그 환경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
장애는 기피하고 감춰야 할, 숨기고 멀리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
너랑 내가 다른 얼굴인 것처럼 각자 조금 다른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는 거라는 걸 배울 수 있으니까.
아빠 엄마에게 장애 통합 학교라는 건 피해야 할 이유보다 선택하고 싶은 이유이고,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 또한 우리에겐 문제가 되지 않으니..
"엄마, 우리집은 몇 동이야? 무슨 아파트야?"
며칠 전 네가 물어본 질문에 답해주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가 아니고, 그래서 몇 동이라는 주소가 없지만
그래서 바윤이 네가 아파트에 사는 아이보다 불안정하고 위험할까?
그런 아이로 자랄 확률이 크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빌거(빌라 사는 거지)', '휴거(휴먼시아=임대주택 사는 거지)'라는 말이 유행이라는 데, 엄마는 네가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듣는다면, 우리가 빌라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아니라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란 걸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는 그 사람이 사는 집과 타고 다니는 차, 다니는 회사, 연봉과 지위, 학벌과 집안이 말해주지 않는 것. 찬찬히 보아야, 오래도록 보아야 알 수 있는 그 사람만의 가치와 의미에 집중하는 네가 되기를 바라거든.
엄마 아빠가 2번 학교를 기피하는 두 가지 이유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번 학교 진학을 두고 고민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세상이 말하는 '꼴통 학교'가 되어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수가 너무 적다는 것과 공립학교의 특성상 하원 시간이 너무 일러 엄마가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 때문이었단다.
사립학교는 유치원처럼 오후 3시까지 너를 안정적으로 돌봐줄 뿐만 아니라 훨씬 많은 수의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일을 하는 나에게도 학교생활을 하는 너에게도 더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원을 하게 된 것인데,
멀미를 하는 네가 힘들지 않게 통학을 할 수 있는 그 학교, 우리가 합격공을 뽑은 1번 학교에 너를 보내기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학습량과 교육과정,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고액의 수업료와 경제적 부담이 있었으니...
"그냥 천천히. 많이도 빨리도 말고 천천히, 찬찬히.
빠듯하게 벌어서 내고, 초조하게 쫓아가느라 급급한 일상 말고 -
지금처럼 욕심 없이 여유롭게 벌고, 우리끼리 느긋한 일상이 좋지 않을까?"
우리는 그런 일상을 꿈꾸며 선택했어.
한 달에 백만 원을 더 버느라 바빠지는 대신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상.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존재하는 일상.
엄마도 아빠도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메어있는 직장인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
앞으로 길어야 2-3년?
네가 친구들과 노느라 바빠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그날까지 남은 이 귀한 시간을 우리 셋이 올망졸망 보내보자, 아낌없이 누려보자.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느라 바쁜 일과보다 느긋하게 오붓해서 즐거운 날들을 꿈꾸며
우리는 각자의 일을 조금 내려놓고 너와 함께를 택했는데…
이 길을 택한 오늘의 우리는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엄마는 많이 불안하고 두렵기도 해.
내가 내린 결정이 악수가 될까 봐,
내가 내린 판단이 너를 괴롭게 할까 봐.
어쭙잖은 내 생각이 너를 힘든 길로 내모는 건 아닐까,
네 앞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그 길의 골목골목을 알 수 없어 부들부들, 흔들흔들,
이 말을 들으면 이쪽으로, 저 말을 들으면 저쪽으로.
엄마는 때때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그래서 무작정 아빠에게 달려가 눈물을 쏟기도 했단다.
3년 전의 겨울, 너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6년 전의 겨울, 너의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너의 첫걸음을 앞둔 겨울은 언제나 매섭고 두려워..
나는 3년, 또 3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이렇게 겁을 먹지만
너는 3년, 또 3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당차게 적응을 할 테지.
그런 너를 믿자, 담대하자.
불안보다 믿음을, 초조보다 용기를.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의 불안에 휘둘리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획하고 실천하자,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짐하며 약속할게.
엄마도 너랑 같이 1학년, 엄마도 너랑 함께 신입생.
엄마는 너를 따라 새학년, 새교실에 들어갈 거고,
기꺼이 번쩍- 기쁘게 손을 들어 학부모 대표로 활동할 거야.
이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네가 다닐 학교의 주인도 어느 한 사람이 될 순 없고,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가 힘을 모아 한 조각씩-
저마다의 목소리와 역할을 더해 만들어가야 해.
엄마는 나서기보다 뒷짐지기를,
발언하기보다 침묵하기를,
출석하기보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나에게 쉽고 편한 길이 너를 위한 길이 아니기에,
너를 위한 일은 애를 쓰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기에-
엄마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고, 최선을 다해 볼 거야.
그 길에서 때때로 상처받고, 적잖이 후회하고, 깊숙이 절망도 하겠지만
너와 함께 가는 길이니까, 우리 셋이 걷는 길이니까.
우리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그렇게 폴짝폴짝
우리만의 리듬으로, 우리만의 속도에 맞춰 그렇게 걸어가자.
보름 뒤면 다가올 2019년 새해에도,
새로운 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할 첫걸음도,
잘 부탁해, 모두 모두.
잘 해보자, 우리 함께.
+ 이 글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18년 12월에 쓴 편지입니다.
아이는 자라 3학년 진학을 앞둔 10살 어린이가 되었고,
제가 썼던 편지는 2020년 5월 출간한 세 번째 책,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의 첫 번째 꼭지에
전혀 다른 문체와 형식으로 담았어요.
내 아이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눈부신 인생을 살길 바라는 엄마라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
이 편지가 어떤 글이 되어 책 속에 담겼을지 궁금한 분들은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를 펼쳐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