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을 앞두고 걱정하는 엄마들에게
3월 새학기와 입학 시즌을 앞두니 스치는 생각-
6세부터 슬금슬금 투하하기 시작해,
7세에 절정으로! 입학을 앞둔 1-2월 겨울방학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쏟아지던 걱정 폭탄!
한글이고 수학이고 미리 가르칠 기미가 없는
엄마에게 날아왔던 우려들이 떠올랐어요.
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글을 가르치지 않으셨나요?
제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1) 내 입장
: 입학 전 반드시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음
아이가 특별히 원하지 않으면 최대한 늦게 가르치고 싶었음
2) 아이 입장
: 한글 공부에 대한 흥미와 의지가 없었음
저도 바윤이도 한글 공부에 대한 관심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에요 ㅋㅋㅋㅋ
만약 바윤이가 한글에 호기심을 가지고 가르쳐달라 요구를 하거나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터득을 했다면 한글을 알고 학교에 들어갔을 터 ㅎㅎ
하지만 바윤이는 이 경우도 저 경우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냥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요즘은 6살만 돼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쓰는데요,
아이의 자존감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요?
문제는 나도 바윤이도 사회 속의 일원이기 때문에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의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다른 친구들은 모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상황에서 혼자 글을 모른다는 건, 아이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와 문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바윤이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고,
저희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던 바-
저랑 바윤이의 경험과 과정을 정리해보면요,
평상시의 충분한 안내
일단 저는 5세부터 글을 읽을 줄 아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평소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해줬어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친구들은 집에서 공부를 해서 그래.
바윤이도 공부를 하면 글을 읽을 수 있어.
바윤이가 원하면 언제든 엄마는 글자를 가르쳐줄 수 있어.
글자를 배우고 싶으면 이야기해줘. 엄마가 알려줄게."
(글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능력이 아닌 수행의 차이임을 강조하며 원할 경우 언제든 너도 공부를 할 수 있고, 적절한 도움을 엄마가 제공해줄 거라는 확신 전달)
때마다 바윤이의 대답은 늘 관심 없음.
"난 안 배우고 싶어." 였고, 그래서 7세가 되었지만,
2018년 5월 상황 발생
7세 반에 올라간 지 막 세 달이 되었을 무렵 사건이 발생했으니! 글을 다 읽고 쓸 줄 아는 친구들이 "너는 그것도 모르냐?" 놀렸다며 나도 한글을 가르쳐달라 요구하는 일이 생긴 거예요.
우리의 대처, 그리고 3개월
당시 바윤이는 단호하고 분명하게도 "엄마랑 하는 건 싫어. 나도 친구들처럼 집에 오는 선생님을 불러줘." 요구를 했고, 그렇게 찾아오신 눈높이 선생님과 샘플 수업을 한 결과, "수학도 같이 할래. 수학이 더 재미있어."라고 말해 생각지도 못했던 국어/수학 2과목 수강을 하게 되었어요.
아이의 선택, 그에 대한 존중
하지만 채 3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단호한 요구가 점점 더 강력하고 명료하게 찾아왔으니...
"국어는 재미없어. 한글 공부하기 싫어.
지금 꼭 배워야 돼? 그냥 책 읽고 노는 게 더 좋아."
→ 한글 교재와 공부를 너무 싫어함.
"난 이거 할 줄 아는 데 왜 자꾸 같은 문제를 풀어야 돼?
할 줄 아는 걸 자꾸 물어보는 게 너무 귀찮아. 하기 싫어!"
→ 반복적인 연산 문제를 매우 싫어함.
그러니 뭐 결론은 학습지 그만- 중단!
그래 그럼 나중에 학교에 가서 배워라~
"꼭 지금 미리 배워야 하는 건 아니야.
나중에 또 바윤이가 하고 싶어질 때,
친구들은 다 아는 데 나만 모르는 게 싫어질 때,
그때 다시 하자, 나중에 학교 가서 해도 충분해."
하고 방문 수업을 정리했어요.
건강한 자존감은 어디서 올까?
평상시 나의 말과 태도, 관계는?
다른 친구들이 다 아는 걸 우리 아이만 몰라서,
다른 친구들이 다 하는 걸 우리 아이만 못해서,
우리 아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모자라고 처질까 봐,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불행할까 봐,
~~할까 봐, ~~할까 봐, ~~할까 봐 …
진짜 일어난 일 아니고 가정법을 전제로 시작되는
우리의 고민과 불안은 끝이 없고, 그 고민의 상당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지나갈 확률이 크니까,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던 일이 되곤 하니까~
내 불안은 내가 다스리면 될 일이고,
어차피 모든 영역에서 뒤처지지 않고
앞서갈 순 없잖아요? 진짜 문제는
다른 친구보다 뒤처진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거잖아요?
"바윤아, 모든 사람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는 없어.
엄마처럼 앉아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빠처럼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엄마처럼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걸 잘하는 사람도 있고,
아빠처럼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물건을 파는 걸 잘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는 전부 다르거든.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달라.
다른 건 나쁜 게 아니야, 당연한 거야. 그래서 좋은 거지.
사람들이 다 똑같은 걸 좋아하면 곤란하잖아.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고 잘해야 같이 살기 좋지.
바윤이는 어떤 게 좋아, 어떤 걸 잘하고 싶어?"
8살 바윤이가 좋아하는 건
돌봄 교실 안 하고 바로 집에 오기,
주말에 어디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기,
그림 그리고 색칠하기, 멋찐 마이크 직접 만들기,
그래서 자주 하는 건 그림책 만들기,
그래서 하고 싶은 건 그림책 작가였고요~
이제 막 9살이 된 바윤이가 좋아하는 건
노래 부르면서 춤추기 (보는 사람은 절대 없어야 함!)
계산기 가지고 문제 내면서 곱셈 놀이하기,
포스트잇 카드로 잔액 계산하며 마트 놀이하기,
그래서 되고 싶은 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이고요~
내가 무얼 좋아하든, 무얼 잘하고 무얼 못하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
끊임없이 감탄하고 환호하며 응원해주는 사람.
그냥 한 사람, 겨우 한 사람, 세상에 단 한 사람.
그런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나의 자존감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저는 알고 있어서요,
그런 한 사람을 갖고 있어서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생애 첫 달리기 시합을 앞둔 (운동신경 제로에 키가 제일 작고 느린) 아이에게
"꼭 꼴찌하기야! 엄마 아빠는 운동 신경이 없어서
학창 시절 내내 꼴찌밖에 안 했단 말이야.
바윤이는 엄마 아빠 딸이니까 셋이 같이 꼴찌클럽하는 거야.
혼자만 잘하기 없기야, 꼴찌가족 하는 거야~?!!"
설레발을 치고요,
4명 중 3등을 하고 숫자 3 도장을 손에 찍고 온 아이에게
마구 배신자 모드 + 세상 호들갑.
"뭐야아아아아! 우리 같이 꼴찌하기로 했짢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혼자 3등 하기 있기야?!!
왜 이렇게 달리기를 잘해?!! 완전 배신이다~~
우리는 3등 한 번도 못 해봤는데!!! 대박이다!!"
를 마구 외친 결과,
물고 빨고 장해 죽겠네 난리를 친 결과~
손등에 찍힌 1을 마구 자랑하며
3이 찍혀있는 바윤이 손등을 휙 낚아채
"뭐야~ 3이야? 난 1뜽!인데,
너 무지 느리다. 나보다 못하네?"
놀리는 친구에게 바로 대꾸!!
"나 느린 거 아니거든! 원래 우리 엄마 아빠랑
꼴찌하기로 했는데 너무 잘 뛰어서 곤란한 거거든!
3등도 엄청 잘한 거거든! 1등만 잘한 거 아니거든!!"
"그럼 그럼!! 옳소 옳소!!!
장하다 우리 딸!!! 멋찌다 우리 딸!!!"
괜히 울컥 눈물까지 날 것 같은 감동을 느끼며 그 멋지고도 당찬 아이의 모습에 무한 감격ㅜㅜㅠ
그놈의 운동회 때문에, 아직도 여전한 줄 세우기 문화 때문에,! (아니 손등에 도장은 왜 찍냐고요!!!)
혹시라도 아이가 상처 받고 주눅이 들까 노심초사 걱정했던 우리 부부의 마음이 사르르 눈 녹듯 사라졌어요 :)
당장 우리 아이를 둘러싼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와 친구, 선생님,
아이가 속해있는 문화 전부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오늘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나의 태도,
나의 말과 나의 생각, 나의 오늘은 바꿀 수 있으니까,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
"엄마, 이 신호등은 17초가 됐을 때부터 깜빡이기
시작하는 거 알아? 여기는 17초가 깜빡이 시간이야."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투욱,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아이의 말에 폭풍감동!!!
"진짜???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를 건너면서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해봤는데, 까맣게 몰랐는데?!!
바윤이는 어쩜 그렇게 관찰력이 좋아???!! 가만 보면
바윤이는 주변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세심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더라~ 그게 되게 어려운 거거든.
특히 매일 다니는 익숙한 곳일 땐 더더욱 잘 안 되는 법이라~
엄마는 그게 너무 부럽고 대단해. 엄마한테도 비법을 좀
알려주라!! 어떻게 하면 그런 걸 발견할 수 있나요?!
저에게도 그 능력을 전수해주십시오! 바윤 박사님!"
".... (또 호들갑을 떠는 엄마 때문에 상당히 쑥스러움.
하지만 매우 기분이 좋음의 침묵 잠깐) 그냥~~
지나다니면서 봤을 뿐인데,?; 비법 같은 건 없는데~
그게 대단해? 어려운 거야?"
"그러어엄!! 그런 눈이 예술가의 눈이자 과학자의 눈이지~
그런 걸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글도 잘 쓰고, 남들이 몰랐던
미지의 세계를 찾아내기도 하는 거거든~ 우리 바윤이는 커서
예술가가 되려나? 과학자? 시인? 탐험가? 사실 뭘 해도 좋아~
뭘 해도 잘할 거야. 그런 능력은 모든 영역에서 빛나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제가 되고 싶은 엄마는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보다 못해도 괜찮다, 모든 걸 잘할 순 없다,
네가 누군가보다 못하고 미숙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속도와 능력을 하나의 잣대로 줄 세워
평가하는 세상의 기준이 문제다, 알려줄 수 있는 엄마.
아이가 가진 재능과 장점을 북돋아줄 수 있는 엄마.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너의 속도,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남들보다 느려도 빨라도,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요?! 아이돈케어-!
우리만의 걸음을 화알-짝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엄마이고,
그래서 또 걸어갈 초등 2학년의 한 걸음,
이제 겨우 두 번째이지만 그래서 또 귀한 초등 학부모 1년을
올해도 귀하게, 행복하게, 기쁘게, 감사하게 걸어가 보렵니다 :)
우리 집엔 아직도 온몸이 사르르르 녹아버릴 살인미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소를 마구 발산하는 보물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