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 범 무서운 줄 알아야 돼.
중학교 시절이 더 즐거웠는가, 고등학교 다닐 적이 더 즐거웠는가.
여중 여고 나온 여자는 남녀공학을 부러워한다.
이는 흡사 친오빠가 없는 동생은 친오빠 있는 자기 친구들이 부러운 이치다.
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는 열등을 느낀다.
중학교 때 내가 선망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건 여자든 남자든 큰 관계는 없다.
여자 선생님은 멋진 커리어가 멋있고 보이고, 남자 선생님은 굵직한 목소리로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넋이 나간다.
그러나 민서는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모난 것은 딱히 없다.
눈은 작진 않지만 안경을 써 눈이 작아 보이며, 머리는 긴 생머리에 교복 치마는 무릎 정도 내려오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다.
이 학생은 정의롭고 싶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학생회장처럼 똑 부러지게 하고 싶은 학생이다.
성격을 바꾸고 싶다고 늘 다짐을 한다.
대학교에만 진학해서 성인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꿈을 향해 쫓는다.
사실 꿈은 거창하진 않다. 그냥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것이다.
늘 학생 때는 주변에서 세뇌시킨다.
대학 가면~, 커서~, 나중에 다~ ... 그걸 조금이라도 반박하는 순간 나의 체면의 혼란이 개입될 것이라며 나는 수긍하며 산다.
다행히 바른 학생으로 자란 덕에 취업은 쉽게 쉽게 할 수 있었다.
마케팅 회사에 대리로 일을 하면서 회의에서는 큰 의견은 내진 못하지만 앞선 선배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며 모두의 의견을 지키며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직원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성실함이 다른 사람들보단 눈에 띄었는지 대부분의 정보들이 나한테 들어온다.
뭐 그 정보들이 나한테 당연한 피해는 없지만 잘 들어주는 습관이 발현되어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비록 아직은 신입이라 배우는 단계지만 회사에 누를 끼치지 않고 배우고 있다는 느낌에 결코 나쁘진 않다.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
회사 안에서의 모습과 회사 밖에서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심지어 다른 인종으로도 보인다.
정장만 입혀 놓으면 회사 내에서는 누가 봐도 바른 직장인이고, 길에서 만난 정장 입은 모습은 도를 아십니까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뭐 이게 큰 상관이겠느냐마는.. 나는 회사만 일단 잘 다니고 1년은 채워야겠다.
좀 지났을까 그렇게 많지 않은 직원들도 한 명 한 명 나에게 다가와 고민 이야기를 꺼낸다.
같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도는 말은 최대한 아낀다.
그러나 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은 훤히 다 보인다.
개인적인 집안일이나 가족 이야기, 배우자 이야기, 취미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
민서는 잘 들어주는 편이라 그 사람을 위해서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집중해서 들어준다.
상대방에게도 전달이 잘 되었는지 더 많은 걸 이야기 한다.
뭐 굳이 들어야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뭐 듣는 거에 힘이 들진 않는다.
눈은 상대방을 놓치지 않고 공감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만 든다면 성공이다.
회사에서 민서는 착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민서는 잘 들어주는 애, 내가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남아서 하는 애, 남을 흉보지 않은 애. 입이 무거운 애.
어딜 가나 인정받는 민서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긍정적인 에너지를 뽐내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착한 민서는 잘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내면에 답답함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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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잘 참는다.
참는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조금 화를 내면 인격은 약간 깎이는 정도이다.
옳은 대도 불구하고 참으면 내가 더 옳아진다.
옳다는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옳음 속에 갇혀 그른 상황을 삼켜버릴 정도로 본인이 거인이 되어버린다.
즉, 나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옳은 여자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100프로 그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옳음의 극치가 빚어지는 일이다.
내가 옳은 행동을 하고 옳은 소리를 해도 바라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옳다는 여자 조심하고, 평생 가면 쓴 수컷을 경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