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문제는 서울에 두고, 우리는 이곳의 문제를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비 오는 인천공항을 떠나 경유지인 하노이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 동네에 도착하자 시간은 밤 11시. 이곳 하노이는 어둡지만 맑음.
이국적인 풍경 하나하나에 우리는 반응했고 어둑해서 보이는 것 없어도 즐거웠다.
서울을 떠나왔다는 해방감에,
좀처럼 둘 곳 없던 마음을 조금은 내지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언니, 여기 하노이야"
우리는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익숙한 풍경과 공기를 훌쩍 떠나 낯선 풍경, 낯선 공기가 지배하는 곳에 발을 딛는 것.
서울에서의 문제는 서울에 두고, 우리는 이곳의 문제를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 명료함이 기뻤다.
좁은 인도에 사람이 지나갈 틈 없이 차를 대놓은 하노이 사람들 덕에
빵빵 거리며 흥정을 요구해오는 택시들 사이로 덜덜덜 캐리어를 끌며 숙소로 향했다.
늦게 도착했지만 작은 호텔의 직원은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자다 깨어 손수 짐을 운반해준 친절한 직원이었다. 그가 곧 하노이의 첫인상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발견한 부부의 노상 식당. 뒷 철문에는 Pho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부부의 식당 근처를 서성였다.
테이블 위에 닭, 소, 돼지고기를 덩어리 째 올려놓고 파는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에 '저거 먹고 내일 배탈 나도 전혀 안 이상할 듯'이라며 걱정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후리하게 먹어보겠냐며, 이런 게 여행이라며 자리를 잡았다.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더듬더듬 영어를 내뱉으며 우리의 여행에 대해 물어오던 두 부부에게 대접받은 여행 첫 끼였다. 길거리 어느 곳에서 먹든 맛있다는 베트남의 쌀국수로. 정말 걱정이 무색해지게 맛있었던,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이런 노상 식당이 동네에 있다면 야식을 즐기는 나는 백번이고 갈 텐데.
다시 하노이에 온다면 이곳을 더듬어 찾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고 숙소 입구 어귀에서 큰 쥐들을 마주쳤다.
확실히 그렇게 큰 놈들은 처음 봤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듯 골목을 지났고 역시나 친절한 직원이 우리를 다시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계단을 오르던 우리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Happy Birthday"
열두 시가 지나 언니의 생일이었고 올 해의 가장 첫 번째 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