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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Dec 08. 2016

치앙마이행 야간열차

고요함이 좋았던

태국으로 떠나오기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여정 중 하나는 치앙마이로 가는 야간열차였다.

방콕보다 북쪽에 위치한 치앙마이로 가기 위해서는 보통 비행기나 야간열차를 이용한다.

비행기가 열차보다 훨씬 빠르고 쾌적할 수 있지만 내 선택은 열차였다. 야간열차.

늦은 저녁에 탑승해 차창 밖을 보다가 잠이 들면 이른 아침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기대와 별개로 기차에 오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언니와 나는 예기치 못한 이벤트들로 기차역이 있는 훨람퐁역까지 그야말로 냅다 뛰어야했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겨우 기차가 떠나는 시간에 플랫폼에 도착해 간신히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플랫폼을 떠나며 우리는 헉헉대던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친절한 승무원과 마음씨 좋은 옆칸 사람을 만났을 때, 초조함에 굳어졌던 얼굴은 한결 풀어졌다.


급하게 온 터라 식사를 거른우리는 승무원에게 간단한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어떤 맛일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 사진과 메뉴 이름들을 더듬으며 나름 엄중하게 골랐다.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과 그곳에서의 저녁식사. 식사를 하며 기차를 요리조리 살펴보니 오래된 열차임에는 분명했지만 쾌적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찝찝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천천히 짐을 정리하고 씻을 준비를 했다.



곧 있으니 호탕한 승무원 언니가 승객들에게 침대로 바꾸겠냐고 묻는다. 응하면 언니의 빠른 손을 거쳐 의자가 침대로 탈바꿈한다. 나는 언니가 변신시켜준 침대에 앉아 커텐을 쳤다.

차락. 기차의 소음과 조금 멀어졌다.

가방을 뒤적여 여행을 떠날 때 챙긴 책 한권을 꺼냈다. 아주 오랜만에 두 손 가득 책을 손에 쥐었다.

커텐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집 책장에는 열 페이지도 못 넘긴 책들이 가득했는데 그날따라 신기하게도 책이 술술 잘 읽혔다. 몸을 더 빛 쪽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더 신기한 건 그 시간의 침묵이었다.

이렇게 아주 조용히, 누구와 구태여 말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내가 머물러 있는 이 시간들을 혼자서 차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만이었던가. 이불 속 발을 괜히 꿈지럭거리며 실실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설레기까지 했다.


그간 정말 혼자있는 시간이 부족했구나, 싶었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시간을 이 열차에서 찾았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까지 책을 읽었다.

눈이 뻑뻑하다고 느껴질 땐 창 밖의 불빛을 따라갔다. 문득 방콕과 치앙마이가 생각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이 기분 좋은 고요가 오래 갔으면 했다.  





이른 알람이 울렸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잠에서 깨고 싶었다. 이른 아침에만 볼 수 있는 아까운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은 나무, 흙, 들판, 집 같은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밟아본 적 없는 땅이었기에.


그런 풍경들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치앙마이를 그려냈다. 나는 치앙마이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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