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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이 Jul 27. 2024

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응 그래- 밥 먹고 있나? 어. 밥 먹고 있다. 엄마는 먹었나? 이제 먹을라고- 그래, 날씨가 덥네. 그래.. 와이래 덥니. 그러니까.... 아니- 다른 게 아니고 티브이를 보다가 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흐흐 내 어릴 때 무슨 생각이 났는데?


아니.. 니 어릴 때 전학도 많이 댕겼던 게 생각나서.. 니 그렇게 전학 가기 싫어했는데...


 내가 기억 안 나는 언젠가의 귀여운 추억을 얘기할 줄 알았던 그녀의 입에서 갑작스레 쏟아져 나온 미안함이 담긴 고백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난 전학을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약 세 번 정도의 전학을 다녔던 것 같다. 그때는 전학의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으레 그렇듯이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내성적이어서 적응을 못했던 것인지, 잦은 전학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내성적 이어진 것인지 잘 모르지만 몇 안 되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시절의 기억 속 나는 항상 주눅 들어있었다. 친구들에게 말을 걸기도 쉽지 않았고, 항상 내 마음은 교실 외곽 1 분단의 왼쪽 혹은 4 분단의 오른쪽 언저리에 놓여있었다. 뭐, 쉽게 말해 아웃사이더였다는 말이다.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9살의 내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작은 목소리에 어딘가 경직된 웃음, 불편해서 콩콩 뛰는 가슴, 살짝 아래를 보는 시선을 하고 있는 통통한 볼살의 나. 


 내 기억 속에도 내가 애틋한데 엄마의 눈에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짠했을까. 심지어 그녀는 더욱 선명히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텐데. 어렸을 때야 전학을 왜 가는지도 모르겠고, 이사를 왜 이렇게 자주 다니는 지도 모르겠고, 친구와 헤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아마 전학 가기 싫다고 엄마아빠 앞에서 엉엉 울었을 것이다. 아마 원망 섞인 말도 했겠지. 엄마는 그런 나를 달래느라 바빠 그녀 스스로의 마음은 미처 달랠 수 없었나 보다. 내 울음소리는 그녀에게 마치 천둥소리 같았고, 천둥소리에 베인 그녀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20년 전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일상을 보내다가도, 혼자 티브이를 보다가도 지금처럼 문득문득 20년 전의 내가 계속 그녀의 눈에 밟혀 못내 미안한 것이다.

나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의 고백에 대답했다.


"에이- 무슨 20년 전 얘기를 하고 그라노- 나는 기억도 안 난다."

"맞나- 기억도 안 나나.. 그래, 그럼 됐다. 그런 거는 기억하지 마라."


그녀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 시절을 잊고 사는 것이 그녀의 구원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앞에선 어린 시절 기억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내가 그때를 잊고 사는 것이 마치 어린 내가 그녀를 용서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거창한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내 망각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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