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벽을 깨운 이야기, 소설『나이팅게일』서평
새벽 다섯 시가 되면 눈이 번뜩 뜨이던 한 주, 새해에 만난 소설 『나이팅게일』 덕분이었다. 중학생 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훔쳤더라면, 나이팅게일은 성인에게 도착한 안네의 일기에 가깝다.
감사, 사랑, 생존, 희망, 자유, 용기, 정의, 투쟁, 희생, 우정
머릿속을 여러 단어들이 스쳐간다. 흡입력 있는 필체와 촘촘히 짜인 스토리텔링. 그 무엇보다 이것은 세계 2차 대전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700페이지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은 한순간에 품에 들어왔다.
감사
무시무시한 겨울이 지난 후 그녀는 나른한 상태에 빠지게 하는 햇살에 감사했다. / 215쪽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았음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전쟁은 알려준다. 발 끝에 다가와도 느끼지 못했던 전쟁의 기류. 우체부였던 비안느의 남편 앙투안이 참전하게 되며 전쟁은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햇살에, 한 모금 물에, 채찍질을 당하지 않음, 배급으로 돼지 뼈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투쟁
기도와 믿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구나. 정의로운 길은 위험할 때가 많지. 준비하거라. /200쪽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렇게 저항이 시작된다.
그런 다음 그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지라 -렘코 캠퍼트 / 233쪽
자매 사이인 비안느와 이사벨은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정반대의 기질을 갖고 있다. 이 자매 역시 1차 세계대전을 치른 아버지의 상흔을 보며 자라났다. 현실순응을 택하는 비안느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문거리인 이사벨.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이 자매를 다시 한 데 묶어준다. 자매뿐이랴. 평생 자매를 등한시하던 아버지와도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확인한다.
가지 않은 길, 들어섰을 때 위험하지만 누군가는 해내야 할 일. 그 일에 한 발짝 내민다는 것에는 수없는 계산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용기보다는 많은 계산에 가깝다. 가족, 직업, 생계에서 초연하지 못하다. 하지만 '질문'하자. 가만히 있는 내가 옳은지. 지금의 나 역시 수없는 투쟁의 반영이다. 여러 사람들이 희생하지 않았으면, 이토록 편안하게 책을 감상할 수는 없었을 테다.
연약
"우리 모두 연약하단다. 이사벨, 전쟁 중에 우리가 배우는 게 바로 그거지."
강한 줄 알았지만 연약했다.
약한 줄 알았지만 누구보다 강했다.
극한의 상황일 때 비로소 나에 대해 알게 된다. 전쟁 중에 이들의 마음속에 일어났을 무기력함이 다가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항하고 싶지만, 소총 개머리판으로 나가떨어지는 옆 사람을 보고 그 생각은 저문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반복된다.
전쟁이 그리 멀지 않다. 우리의 역사에도 아직은 '휴전'이다. 얼마 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우크라이나 병사의 퀭한 눈을 기억한다. 이야기 속 독일군 벡이 얼마나 큰 가치갈등을 느꼈을지도 생각해 본다. 전쟁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정
넌 널 안으면 울 거고, 난 울면 안 돼." -라셀이 비안느에게- /403쪽
라셀이 어떻게 여전히 숨을 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406쪽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학살의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져 마음이 내내 뻐근하게 아파왔다. 지배를 위해 선택한 수단이 타인에 대한 멸시라니, 그리고 그 전략이 '먹혔'다니 우습기만 하다. 영문도 모르고 유대인들은 노란 별을 가슴팍에 단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 흘러간다.
나의 모든 것을 함께한 벗과의 헤어짐. 그리고 나로 인해 친구가 곤란함에 빠지게 됐을 때의 절망감, 친구의 아이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의 애통함과 담담함(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쯤 해두도록 하자).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묻지 않고 희생하며, 묻지 않고 용서하는 힘이 된다.
가족
"우리가 서로 되새기게 해주자. 알겠지? 힘든 날에 그렇게 하자. 우린 서로를 위해 강해질 거야."
-비안느가 딸 소피에게- / 636쪽
난 불안감 없이 지금 하려는 일을 한다. /663쪽
이 책은, 그래서 읽어봐야 한다.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내 딸이 전쟁을 겪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나를 버린 줄로만 알았던 내 아버지가 나를 위해 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최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사랑한다' 매일 말하지 못했음을 후회할까. 가장 소중한 이에게 제일 큰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지 않는가. 이야기가 정말이지 탄탄해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내가 겪고 있는 것만 같아서 새벽마다 와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인생
세 라 비, 무슈(그게 인생이지요) / 670쪽
'내 인생, 충분해' / 678쪽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를 지닌 이 소설은, 그래서 현재에 나오는 그 '할머니'가 누군지를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할머니의 아들은 누굴까를 가늠하는 것도 재미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예측했던 '할머니가 누구인지, 아들은 그래서 누군지'를 모두 틀렸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더욱 짜릿했다.
어릴 적 나에게 너무나도 거대했던 초등학교를 어른이 되어 마주하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듯이, 나중 언젠가 나의 인생도 작은 가지들로 이어져 보이게 될까? 큰 나무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될까? 충분한 내 인생이 되도록, 내가 밟은 길이 인생의 순간임을 기억하도록. 나이팅게일은 그런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