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티에 May 03. 2016

언어, 성차별하다: "결국엔 다 창녀!"

언어 거꾸로 보기


아기들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언어를 습득합니다. 어른이 되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하고자 노력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기의 언어습득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은 약 12세 이후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약에 한 아이가 12세 전까지 그 어떤 언어에도 노출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다면 슬프게도 그 아이는 죽을 때까지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갓난아기때 버려져 동물들과 생활하다 구조되거나 또는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에 의해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감금생활을 하나가 풀려난 아이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특히 약 10세  이후에 구조된 아이들은 두세 개 정도의 단어를 가지고 매우 제한된 의사소통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현저히 낮은 지적능력으로 인해 평생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촘스키는 여기서 일반적인 상식을 거꾸로 뒤집는 이론을 이끌어 냅니다. 우리는 보통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복잡한 생각을 표현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단순히 인간의 고차원적인 생각이 인간의 언어를 낳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촘스키는 거꾸로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고차원적인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말했던 갓난아기때부터 오래도록 인간의 언어와 단절된 생활을 한 아이들에 관한 기록도 촘스키의 이론을 뒷받침합니다. 언어습득시기를 놓쳐 그 어떤 언어도 구사할 수 없게 된 그 아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 수준의 지적사고또한 영영 하지못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촘스키는 주장함니다. 놀랍게도 인간의 지적인 생각은 인간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결과라구요.  


이처럼 언어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 거꾸로 그 사람의 생각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을'같은 '갑'일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렇게 사람의 생각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어 자체에 이미 성차별적 시각이 존재합니다. 사실 한국어는 그나마 꽤 양호한 편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의 엘리트 언어로 군림했던 프랑스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프랑스어에서는 대다수의 명사와 형용사가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단어들이 남성형일때는 일반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를 가지다가 여성형으로 넘어오면 뜬금없이 "창녀" 또는 "걸레"의 뜻을 가진 욕설로 변합니다.



"파탈 바주카"(Fatal Bazooka)라는 프랑스의 인기 코미디언은 이런 이상한 프랑스어 단어들을 모아 "그건 창녀"(C'est une pute)라는 '웃픈'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qqCgtxWf0E


예를 들어 "gars" 는 영어의 "guy"쯤에 해당하는 "남자"라는 뜻의 남성명사인데, 이것의 여성형인 "garce"를 사전에 찾아보면 "걸레", "헤픈여자"정도의 뜻이 나옵니다. 또 영어의 "master"에 해당하는 불어의 "maître"라는 단어는 남성명사로 "주인","학교 교장이나 선생님"등의 뜻을 가지지만 이것의 여성형인 "maîtress"라는 단어의 첫번째 사전적인 뜻은 "첩, 정부"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영어의 "mistress"라는 단어도 이 프랑스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Allumeur"라는 남성명사는 "라이터, 또는 가스불등을 켜는 장치나 도구"라는 뜻인데 반해 이것의 여성형인 "allumeuse"는 "요부" 또는 "남성의 성기를 애무하는 행위"란 의미를 지닙니다.



동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돼지"의 남성형(cochon)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로 많이 먹거나 지저분한 사람 정도를 지칭하지만 여성형(cochonne)은 "걸레", "성적으로 헤픈 여자"를 가리킵니다. "개"의 여성형(chienne)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로 "암캐"를 의미하는 "bitch"란 단어도 불어단어와 비슷하게도 욕설로 널리 쓰이고 있지요.)


결국 노래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단어의 여성형은 황당하게도 모두 "창녀" 또는 "걸레"로 귀결됩니다.


사실 프랑스어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어가 속해있는 로망스어군의 다른 언어를 보아도 비슷한 현상이 어느 정도 들어납니다. 라틴어에 뿌리를 둔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에서 영어의 "fuck" 또는 "fucking"(한국어로는 "씨발" 정도가 되겠네요)에 해당하는 가장 일반적인 욕설은 모두 다 같은 단어에 기원을 둡니다. 프랑스어로 "putain", 스페인어와 포르투칼어로 "puta"인 이 어휘는 라틴어로 여자, 소녀 등을 의미하는 "puta"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물론 그 뜻은 단순히 "여자"가 아닌 "창녀"로 변해서 쓰이게 되었구요.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물론 영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Hussy", "courtesan", "tart", "madam" 등등의 영어단어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엉뚱하게도 "창녀"나 "걸레"라는 의미를 입게 되었습니다. "창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특정한 직업의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 중 그 뜻이 부정적으로 변질되어버린 경우도 사실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노처녀라는 뜻을 가진 "spinster"란 단어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원래 실을 잣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던 이 단어는 많은 독신 여성들이 생계수단으로 실 잣기를 하게 되면서부터 슬슬 부정적인 의미의 말로 변해갔습니다.)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6/jan/27/eight-words-sexism-heart-english-language


언어와 성차별적인 시각은 서로에게 쌍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성차별적인 시각이 언어에 스며들어 수많은 단어의 의미를 바꾸기도 하고, 또 반대로 언어 속의 성차별적인 요소가 은연중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 편견을 심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조합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언어가 가지는 교묘한 성정치학의 의미를 헤아리게 되지 않는 한, 여성비하적 시각은 계속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지도 모릅니다.


촘스키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언어는 분명 우리의 생각 자체를 아우르는 막중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성차별적인 시각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성의 차이에 의문을 던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