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보다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

by 김슬기



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 중에

고작 그 정도 수준에서도 그렇게 힘들어했다는 게 유난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솔직히 글을 써가면서도 부끄럽다.

나 같아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아주 시작일 뿐이었고,

그래서 앞으로 더 써나갈 많은 이야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어리고 순진했던 난

대단한 결과랄 것도 이뤄보지 못한 채 시련이 찾아온 것이 당황스럽고 억울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갓 고등학생이 되었던 난, 스스로 나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차분히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방황할 뿐.


내가 가졌던 것이 비록 작은 기대였다 할지라도

기대 이상의 결과에 금방 들뜨고 설레며

분홍빛 미래를 그렸던 것처럼,

몇 개월 만에 부진해진 결과에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부정적인 미래를 떠올린 것뿐이다.



그렇게 유난스러운 게 나였다.



그리고 그 방황은 그 시절 한 때가 아니었다.

그 뒤로도 쭉, 나의 골프 인생 내내 난 방황했다.



너무 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난 운동선수의 자질이 없다.

운동선수랑은 거리가 멀다.


그때 내가 자신에 대해 지금만큼 아니,

지금의 반만큼만 이라도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진 않았을 거다.

난 운동신경도 없고, 예민하고, 복잡하고, 감성적이고, 순진하고, 불안도 높다.

배짱도 없고, 경쟁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특질은 뛰어난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과는 아주 판이하다.


운동선수로써 살아가기에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가 가진 건 끈기와 투지였다.


그래서 그걸 착각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수준은 아무리 소질이 없어도 노력으로 닿을 수 있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할 뿐.

노력할 줄 아는 것도 재능이라고 하지만 진짜 재능은 그것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주변에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진짜 타고났다.'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사람은 성장 속도가 다르다. 배워서 알게 되는 게 아닌 타고난 감각이 있다. 회복속도도 빠르다.


그렇지만 타고난 사람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만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누구나 정말 열심히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으니까.

얼마나 노력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드물게 주어지는 소박한 보상에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희망하나로 힘든 시간을 버텨본다.


'조금만 더 버티고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닐까?'

'훌륭한 선수들은 모두 눈물 나게 힘든 때를 겪고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그럼 나도 지금 그런 지나가는 시기인 건가?'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측은하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육상, 높이뛰기, 현대무용, 재즈댄스 등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였지만

사실 냉정하게 보면 그 어떤 것에서도 특별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없었다.


골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뭐 가끔 본선에도 올라가고, 어찌어찌 프로도 되고, 2부 투어도 몇 번 뛰어보고, 3부에서는 티비에도 슬쩍 나와보고, 아슬아슬하게 투어프로가 될 뻔한 적도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예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현역시절동안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오히려 저런 보상들은 고통 속에서도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잔인한 미끼였을 뿐이었다.

이 정도 수준으로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프로의 세계는 그렇다.


'프로라도 된 게 어디야'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까도 싶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어설픈 프로야말로 정말 할 짓이 못된다는 거.

그래서 나는 누군가는 건방지다고 할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저 그럼에도 의심이나 반대 한 번 없이

언제나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너무 감사드릴 뿐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부리는 욕심이겠지만

그때 냉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곤 한다.


'너 소질은 없는 것 같아.'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엄마랑 산책을 하다가 나온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만하길 진짜 잘했어.

운동 관두고 우리 가족도, 나도 더 행복해졌잖아. 난 지금이 진짜 훨씬 훨씬 행복해. 그리고 애초에 난 운동신경도 없었던 거 같아, 좋아한 거지."


"엄만 너 소질 없는 거 옛날부터 알고 있었어ㅎㅎ"


"진짜?! 근데 왜 말 안 했어! 말해주지!

하긴, 나 같아도 자식이 잘해보고 싶어서 울고불고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너 소질은 없어"라는 말은 하기 힘들 것 같긴 하네."


"그렇지~"


"나도 그 말 듣는다고 "아 그래?, 그럼 그만둬야겠다" 했을 것 같지도 않고. 뭐, 상처만 받았겠지?

근데 그래도! 미리 알려줬으면 돈도 덜 들었을 거 아니야."


"네가 하고 싶어 했잖아. 그렇게 뭔갈 최선을 다해해 보는 경험도 그때 아니면 못했을 거야.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엄마 아빤 너한테 들어간 돈 하~나도 안 아까워.

어차피 그거 너한테 안 들어갔으면 또 딴 데로 어떻게든 빠져나갔을 거야. 오히려 너한테 집중하느라 쓸데없이 엄마 아빠도 한 눈 안 팔고 열심히 살 수 있었지."



엄마한테 “너 운동신경은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일말의 실망 없이 개운하고 속 시원했다.

막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가 듣고 싶어서 기다렸던 말이었던 것처럼.


엄마의 말은 오히려 나를 지지해 주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따뜻한 말을 해주고, 공감해 준다.


노력에 비해 대가를 얻지 못하는 사람에겐 더 호의적으로 대해준다.


많은 위로와 용기 그리고 응원과 지지.


그런 사람에게 냉혹한 조언이나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말한 것들은 모두 이상적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것들이 진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받았던 위로들로 나는 나아졌었나?

오히려 어느 순간부턴 남들에게 위로받는 불쌍한 내 처지만 생각하고 거기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중간쯤부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 이거랑 진짜 안 맞는 것 같아. 괴로워.

단순히 잘하냐 못하냐를 넘어서, 이걸 하면서 살아가는 건 힘들 것 같아.‘


하지만 막상 선수는 그걸 단순히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가 없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투자해 온 너무나 많은

돈, 시간, 노력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있고,


여기서 관두면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 같다는 공포가 있고,


그렇다고 이거 아니면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줄 알겠어라는 두려움이 있고,


지금까지 믿어왔던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실은 잘못된 거였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있고,


이렇게 포기하면 난 영원히 실패한 사람이 되는 거라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가 있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 과연 다시 나를 믿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이번에도 틀렸는데 그때도 또 틀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난 사람들이 내가 쓰는 글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애초에 운동선수가 될 기질과는 기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 세계에 함부로 들어가면

어떤 삶을 경험할 수도 있는지, 그중 한 사례라고 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공감과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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