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양이 반드시 실력이 되는 건 결코 아니야.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혼자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나는 집착적으로 변했다.
하루도 아니, 반나절도 온전히 쉴 수가 없었다.
어쩌다 친한 사람들 손에 이끌려 외출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함께 있어도
머릿속으론 불안과 조바심이 가득했다.
너무 많이, 자주 울었고 매일 우울해했다.
뭐라도 하면 나을까 해서 일기도 열심히 썼다.
매일 밤 눈물로 썼던 일기는 매일 그날의 연습량과 우울한 내용으로 한 장을 쉽게 채울 수 있었다.
여유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무섭게 불안감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파고 들어와서 상념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했다.
체력훈련이든 연습이든 뭐라도 계속해야 했고, 하다못해 그냥 나가서 퍼팅그린에 서있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불이 꺼질 때까지 드라이빙 레인지에 남아있던 사람은 늘 나와, 그런 나를 위로해 주고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었다.
몸도 많이 아팠다. 특히 허리가 문제였다.
잘하는 건 내 맘대로 못해도 힘든 걸 버티는 건 내 의지의 문제이니 훈련을 할 땐 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몸이 아플수록 어떤 존재가 내 의지를 시험하는 거 같아서 더 쉬고 싶지 않았다.
당시 헬스 코치님이 아주 전문가는 아니셔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재활운동이나 근본적인 치료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많은 밤 멘소래담을 발라주시면서 위로를 해주시기도 했다. (물론 제일 많이 하셨던 말씀은 "넌 골프는 아닌 것 같아. 헬스 트레이너가 딱이야." 였지만..)
어느 날, 담당 프로님이 아니던 여고부 프로님께 편지 하나를 받았다.
흔한 일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나와 아주 가까운 프로님도 아니셨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워낙 선배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을 옆에서 봤었기 때문에 언젠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분이었다.
짧지 않은 내용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박히게 된 문장이 있다.
"네가 연습을 약 먹듯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젠가 내가 고민상담을 했던 선배가 프로님께 내 일기장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누구나 알만큼 아슬아슬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일기장의 내용이 무심코 지나치기 힘드셨었던 것 같다.
편지에는 위로와 더불어 따뜻하지만 냉철한 조언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가장 첫 줄에 쓰여있던 저 문장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던 나를 꿰뚫어 본 것 같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맞다. 정확했다.
난 연습을 약 먹듯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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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는 좋아지기 위해 연습을 한 게 아니었다.
하루라도 몇 시간이라도 연습을 쉬면 지금보다도 더 나빠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실시간으로 내 실력게이지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퇴보해 가는 내 실력을 붙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는데도 제자리는커녕 이렇게 뒤로 가는 거라면.. 이 마저도 안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제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자고 나면 어제 연습한 게 다시 리셋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내일은 또다시 0에서부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게이지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불안해했다.
전지훈련 내 일주일에 하루 있던 공식적인 휴일,
새벽부터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손톱을 물어뜯으며 호텔방 안을 안절부절 휘젓고 다니던 나를 보고 룸메이트는
자다 일어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
"슬기야, 왜 그래, 응?"
"아냐, 아무것도 아냐"
"왜 그러는데, 응? 어디 아파?"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연습.. 연습해야 될 것 같은데"
몇 번을 묻던 친구는 말없이 나가 프로님을 모셔왔다.
당시 편지를 주셨던 프로님께서는 쉬는 것도 노력해야 하고 그래야 영양가 있는 연습이 된다고 하셨다.
너처럼 그렇게 연습하는 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강제? 휴식을 취했어야 했고, 그 탓에 그렇게 이상행동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프로님이 휴일 아침 문을 열고 들어오셨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프로님의 얼굴이 보였을 때.
"코치님..."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흘렀고 그렇게 한참을 엉엉 울었다.
울고 있으면서도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상해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무서운 생각들은 나를 점점 집어삼키고 있었다.
전지훈련에서 맞이한 설날.
우리 팀 모두 모여 부모님께 연락도 드리고 감독님께 덕담을 듣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감독님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워드로 작성한 편지를 준비하셨고, 한 사람씩 앞에 나가 감독님께 편지를 받았다.
내 차례가 됐다.
"새해에는 울지 말고, 좋은 성적내서 ~~ 하자"
"슬기는 그렇~게 울면서도 연습한다? 참 기특해"
그걸 칭찬이라고 한 건지, 격려라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들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확실한 건 나는 그 정도로 많이 울었기 때문에 부정할 순 없었다.
가끔 보는 감독님마저도 내 상태를 알고 계셨지만 받을 수 있는 도움은 거의 없었다.
아~주 드물게 감독님께서 근황을 물어봐주실 때나 코치님들께서 겉핣기식으로 물어봐주시는 거 외에는.
그 당시엔 그런 부분에 대해 관리해 줄 수 있는 교육도, 지도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초예민 상태의 여학생에게 뭘 한들 나아질 수 있겠냐만은.
아무튼 감독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진심으로 바랐다.
이 시기가 더 높게 성장하기 위한 시간이길.
한 때 잠깐으로 지나가는 시간이길.
성장도 갑작스러웠으니 이런 갑작스러운 고통의 시간도 있을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제 이것도 금방 지나가겠지.
그러나 이건 내 지독한 골프인생의 아주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