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그리고 혼란

by 김슬기



나의 정식적인 첫 시즌은 시작 이상의 더 대단한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이제 시작했고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나는 너무 비기너였기 때문에 백카운트로 떨어지게 됐다 할지라도 내가 컷라인의 근사치에 가까웠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고, (당시 우리 팀에서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그 정도의 결과를 내는 것도 당연하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물론 라운딩마다의 아쉬움은 골퍼라면 언제나 있겠지만

한 시즌을 통틀어 봤을 때 내가 예상하고 생각했던 내 수준보다 시합 내내 만든 결과가 더 좋았다.

(**‘백카운트 방식 Back Count’**은 시합에서 동타(同打) 즉, 스코어가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순위를 가릴 때 사용하는 방식. 마지막 9홀의 스코어를 비교 → 더 적게 친 선수가 상위.)


괜찮았다.

'이번 시즌은 감을 잡는 시간이었고, 이 정도면 아주 선방했어.'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 기대가 됐고,

앞으로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자랑스러운 딸이 될 생각에 두근거렸다.


이 학교에 오기까지 제대로 된 훈련은 받지 못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참 늘질 않았었다.

연습하기도 싫어했다.

연습장에 간다는 건 재미도 없고 목표도 없었으니까.

매번 꾸역 꾸역이 었다.

아버지가 연습장에 내려주고 가면

락카에 들어가서 몰래 시간이나 때우고

연습장 주차장에 아버지 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연습장에 가기 싫어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하고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는 할머니가 길을 잃고 헤매고 계셔서 도와드리느라고 늦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한 적도 있다.


오죽하면 하루는 프로님이 진지하게 앉혀놓고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너 진짜 골프 계속할 거야? 다른 것도 할 거 많은데.

그냥 관두는 게 어때? 네가 말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말해줄게."

정말로 프로가 아버지한테 그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만큼 나는 노력도 안 하고, 소질도 없었다.



근데 아니었던 거다.


'제대로 훈련받으면 이렇게 빨리 좋아질 수 있었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또 이렇게 열심히 재밌게 할 수 있었구나.'


'어떻게 연습해야 될지 알고 나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게 제일 쉽구나. 몰라서 그랬던 거구나.

아무리 그래도 몇 개월 했다고 이렇게 빨리 느는 것 보면 어쩌면 나 소질도 있는 것 같아.'


'진작에 이렇게 제대로 훈련받고 준비했으면 나도 상비군이나 국가대표가 됐을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클럽도 전부 바꿨다. 더 정교하고 더 비싼 모델로.

그만큼 기대에 한껏 부푼 시기였다.




그 해 전지훈련.

내겐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한 시즌 해보면서 감은 잡았으니, 이번 전지훈련 마치고 나면 더 좋아지겠지?'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현지에 도착해서 일주일간은 잔디, 날씨, 컨디션 모두 적응하느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몇 주 내내 공은 계속 휘고, 기본적으로 나오던 비거리도 안 나왔다.

샷이 안 나오니 플레이가 계속 꼬였고, 당연히 스코어는 엉망이었다.

팔십 대를 허덕이는 날이 자꾸만 생겼다. 칠십 대를 치는 날보다 팔십 대를 치는 날이 더 많았다.


연습공도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컨택마저도 제대로 안 됐다.

그런 날이 계속되니 점점 공을 맞추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너무 혼란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될 아무런 결정적인 이유가 없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된 거지?

연습은 더 많이 하는데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나빠진다고?

나는 계속 이유를 찾고, 찾고, 찾았다.


자신이 없어지고, 스코어가 올라갈수록 연습량은 점점 늘어났다. 웨이트 시간도 늘렸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내 샷이 도대체 뭐가 문젠지,

왜 갑자기 이전보다 모든 게 더 안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프로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하라는 대로 해도 순간뿐이지 근본적으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내게 믿을 거라곤, 내가 기댈 거라곤 연습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훈련 시간 이후에도, 쉬는 날에도 계속 몸을 굴렸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식으로.


'연습하면 좋아질 거야.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야.'


사실 아니었다. 나를 믿고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척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이유를 찾기 위해 나를 타박하고, 채찍질하고, 가혹하게 대했다.

미스샷이 하나 나오면 탄성이 나왔고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이 정도도 못해? 이 정도도? 이 정도는 쳐야 될 거 아니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매일매일 혼내고 보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늘어난 연습량도 나에게 자신감을 주진 못했다.

자신감은커녕 라운딩이 자꾸 무서워졌다.


전지훈련에서는 매 라운딩 전에 랜덤으로 짜인 조편성이 나왔다.

그 안에는 나랑 친한 사람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같이 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낯선 사람들, 불편한 사람들, 같이 치기 싫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는 게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너무 못 치니까.


자꾸 슬라이스가 나오고 뒤땅이 나오고, 탑볼이 나왔다. 수치스러웠다. 미스샷이 나올 때마다 수치스러웠다.


막상 그들은 나를 신경 쓰지도 않았을지 몰라도 (아마 별 신경 안 썼을 게 분명하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의식하고 느끼는 것이 문제인 거니까.


잘 치는 언니, 오빠들이나 프로 언니들하고 조가 묶여 나올 때면, 아프다고 핑계 대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공이나 치고 싶고,

친한 친구들이나 코치님들, 나를 높게 평가해 주던 사람들하고 같이 치게 됐을 땐, 그 사람들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잘 치는 날엔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이 정도는 나와야 맞지.'

가 됐고,

못 치는 날엔

'아, 또! 또! 또 왜 이래?! 또 시작이야 또!!'

’그럼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

가 됐다.


갑작스러운 성장을 느꼈던 난

몇 개월 만에 바뀐 이 상황에

'사실 이게 내 본 실력인 건가?'라는 생각에 갇혀갔고 그 생각을 부정하고 싶어서 발버둥 쳤다.


내가 가둔 감옥에서 나는 점점 나를 옥죄어 갔다.


내 연습량과 함께 늘어간 것은 실력이 아니라

나에 대한 증오와 눈물, 몸에 쌓이는 대미지였다.


갑자기 기대주가 됐던 나는

몇 개월 만에

연습은 많이 하는데 못 치는 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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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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