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수가 될 상인가?
우리 골프부는 우수한 성적의 선수들이 많이 모여있는 팀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내에 소속된 팀이었기 때문에,
구력이 몇 개월 안된 사람들,
시합 한 번도 안나가 본 사람들,
나처럼 제대로 된 훈련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류를 차지했다.
전국시합에서 수상을 하는 선수들은커녕 예선을 통과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예선 통과라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몇 개의 시합을 치르고 나니, 스스로도 대략적인 핸디캡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또한 내가 시즌 전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였다. 기대치가 워낙 없어서였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이 모든 건 성장하는 과정이니, 그렇다면 모든 건 평화로운 과정이었다.
70대의 평균 스코어를 가진 것만으로도
팀 내에서 나는 기대주에 속했었다.
물론 고작 그 정도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항상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코치님이 많은 선수들을 모두 한 타석으로 모아
"OO이 하는 거 봐 봐"라고 나를 집어 말씀하시곤 했다.
모든 시합에서 예선을 통과한 것도,
순위권에 든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만든 작은 결과와 가능성만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기대주로서의 인정과 격려를 받았다.
그땐 그냥 그 정도로 충분히 좋았다.
욕심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훈련하고, 끝까지 버티고, 오늘 몫을 해내면 분명히 훌륭한 선수가 될 테니까.
그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그래서 그땐 자발적으로 '어떻게 하면 스코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나한테 필요한 게 뭘까?', '쟤는 어떻게 하길래 잘 치는 걸까? 나랑 다른 게 뭘까?, '
이런 고민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걸 시키는 사람도, 조언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비슷한 사람들이었으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땐 그저 나와 비슷한 많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좋았다.
물론 골프가 팀 스포츠는 아니지만, 시합 전 티타임이 나오면 마치 새 학기 학생들처럼 티타임을 묻고, 동반자는 누구인지, 어느 코스로 나가는지, 나랑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옹기종기 모여 주고받았다.
좋아하는 친구가 있거나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면 시합 전 이온음료나 간식을 챙겨주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이었고, 친한 동료가 자기 앞 팀이나 뒷 팀에 걸리면 시합 중에도 틈만 나면 서로 아는 척도 했다가, 나인턴 하다가 마주치면 은근하게 서로의 스코어를 물어보는 것도 재미였다.
그중 내가 좋아했던 우리끼리의 암묵적인 문화는 자신의 라운딩이 끝나면 그냥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동료선수의 마지막 홀을 봐주는 거였다.
그 친구가 9번 홀로 들어오는지, 18번 홀로 들어오는지 시간표를 확인하고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가 그린 뒤편에서 우리 팀 선수가 오는 걸 기다린다.
티샷부터 그린에 올라올 때까지 보고 있다가 세컨드 샷의 결과가 좋으면 그린으로 올라올 때 다 같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홀아웃을 하고 나면 다 같이 '나이스'를 외치면서 수고했다는 의미를 담은 축하를 보냈다. (마지막 홀의 스코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내기도 했다.)
옆에 다른 선수 부모님이나 다른 선수들이 함께 있을 때면 더 크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문화가 좋아서 내가 동료들보다 티타임이 늦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땐, 마지막 홀 티박스에서부터 그린에 어렴풋이 사람들이 보이면, '우리 팀인가 봐' 하곤 더 신경 쓰면서 샷을 하기도 했고 좋은 스코어를 내려고 더 열심히 쳤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거였다.
어쩌면 수준급의 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선수판에서는 비기너에 가까웠고, 그런 만큼 모두가 결과에 목숨을 걸던 때는 아니었으니까.
대부분 이제 막 본격적인 시합판에 뛰어든 사람들이었기에 못 쳤다고 시합장에서 부모님에게 손지검을 당하거나, 밥을 먹지 못하거나, 프로님에게 험한 욕을 듣는 다른 선수들을 보는 것은 당시 우리 팀에게는 오히려 낯선 일이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하하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순간들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훌륭한 골퍼가 될 수 있던 재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기엔 난 나약했고, 외로움에 취약했다.
충주에서 열렸던 한 시합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많은 선수들과 함께 팀 버스를 타고 시합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 시합에서 다시 한번 혼자 예선에 붙었다.
그날은 그전 본선에 든 시합과 달리 그 근처 숙소에서 혼자 머물러야 했다.
모든 선수들의 라운딩이 끝나고 언제나와 같이 다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두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친한 동료들은 부럽다는 말과 본선에서도 잘하라는 응원을 전해줬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담긴 마음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당연했다.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할 테니까.
그 덕에 당시엔 조금은 뭐라도 된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느꼈던 기분을 1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붙지 말 걸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이상했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눈물 나는 훈련들을 해온 건데.
'나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떨려서 이런 건가?'
'근데 가고싶어.. 기분도 이상하고 나빠.'
'여기 있기 싫다..'
그날 밤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쳐봐도 마음 깊은 곳에서 기어 나오던 우울함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날 밤, 열여섯의 나는 그저 이상하다고 치부했던 그 감정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경험은 낯설고, 거북했고,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불쾌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내 안에 그토록 깊이 남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티업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춰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약간은 우울한 상태였다.
계속 신경 쓰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몸을 풀면서 공이 어떻게 맞는지보다 내 기분이 더 신경 쓰였다.
'본선이라 떨려서 그런 건가? 아님 내가 기분 나쁠만한 일이 있었던가?, 신경 쓰일만한 일이 있던가?'
아니었다.
플레이에 집중을 하다가도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혼자여서.
그게 싫어서.
그래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추호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잠깐은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그건 아닐 거라고 단정 짓고 싶었겠지.
16살의 나는 좋은 성적보다 친구들과 함께 있음이 더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건 이상한 거니까.
그래선 안 되는 거니까.
나는 골프선순데. 골프선수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그건 너무 창피하고, 흠이고, 나약한 거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건 아니야.
나는 그런 애였는데. 그러면 안 되는 애였다.
‘이상해.. 왜 이러는 거야.’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
그래서 나는 외로워졌다.
그 시절을 회고하며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살의 여자애라 그랬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사춘기에 든 여중생에게 있을 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유난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었으니까요.
그냥 막연히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껴지거나 그럴 때마다 숨어 눈물을 훔쳤었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이상하게 여전히 가슴이 메어지고 울컥 눈물이 나오는 이유가.
외로움을 증오하고, 거부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나도 싫었습니다.
너무 많이 미워했고, 모른 척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나 봅니다. 그 외로운 소녀에게 너무 미안해서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