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경험은 나를 무감각해지게 했다.
내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 감정은 너무나 깊은 폭으로 요동 쳤지만 매 번 그 감정에 휩쓸릴 순 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된 나를 책임져주지 않아. 그 감정에 빠져있는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특히나 가혹한 일인 것 같다.
당근을 많이 먹고 자라야 할 나이에 너무 많은 채찍을 맞고 또 맞는다.
매우 다양한 형태로.
많은 격려와 위로, 지원, 응원이 있지만 패배감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치유해 줄 수가 없다.
살아보니 그건 내가 나에게 해줬을 때 가장 큰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실패가 거듭되면서 어느새 내가 나에게 가장 가혹하고 매정해지기 때문에 그것도 할 수가 없다.
어린 나는 일찍이 너무 잦은 실패를 경험했고,
또래에 비해 일찍 성숙해졌다.
이 세상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뭐 하나 능력도 없고 평범하디 평범한 존재이며
부모님 등골이나 빼먹는 불필요한 짐덩어리라고 여기게 돼버리는 것.
시합마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작은 시합에서도 우승이 아니면 패배감을 느끼게 하고, 더 많은 시합을 나갈수록 어쩔 수 없이 패배감을 느낄 확률은 높아진다.
팀스포츠가 아니고서야 1등이 아니면 모두 크기만 다를 뿐 패배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예선 탈락도 많~이 했기 때문에 훨씬 큰 패배감을 자주 느껴야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냐고?
내가 얘기하는 저마다의 실패를 실패로 정의하지 말고 성장과정으로 생각하면 안 되냐고?
그걸 안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안 해본 사람도 없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끝없이 해내야만 한다.
그 모든 패배감을 이겨내야만
맨 정신인 것처럼. 정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파도의 크기가 너~무 크다.
눈앞의 파도를 넘어서고, 또 넘어서고, 이번엔 좀 더 큰 파도여도 넘어선다.
근데 그 파도가 너무 잦게, 점점 크게 온다.
내가 면역을, 그 빈도와 강도를 견딜 수 있는 힘을 단련할 시간도, 방법도 터득하기 전에 온다.
그냥 그 서핑을 멈추고 몸을 맡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다가 완전히 떠밀려서 다음번엔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면 어떡하지? 감을 완전히 잃고, 이 마저도 해낼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오던 파도를 넘어섰을 때 느끼던 조그마한 성취감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 채 잠식된다. 차가워지고, 딱딱해진다.
살아보겠다고 그나마 있는 일상의 사소한 기쁨이나 성취를 향유해 보자니, 그렇게 열린 구멍으로 패배, 슬픔, 우울, 두려움 같은 것들이 더 강력해서 더 지독하게 들어와 나를 채운다.
그것들이 나를 채워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엔 더 이상 아무것도 해볼 수가 없다.
그런 시기가 언제부터였는지 짐작할 수도 없게 시작됐다.
나는 살기 위해 무감각해졌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