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냐면
근래 들어 추구미라는 신조어가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보인다.
마치 원래부터 있던 단어인 것처럼 듣자마자 무슨 뜻을 가진 단어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나 이미지.
그렇다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추구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추구미라는 정의에 담길 수 있는 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정확하지 않지만 내 기억에 중학교 2학년 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골프부가 있는 학교에 들어가서 합숙을 시작했을 때쯤.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생판 모르는 남들과 함께 생활해 본 것이.
그러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합숙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기에 확실히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지만 합숙이 시작되고는 정말 빠르게 적응했다.
아니, 적응되었던 것 같다.
그곳에는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코치님들이 계시고, 룸메이트가 있고, 같은 시기 입소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었다. 안으로, 그리고 밖으로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명확히 무슨 느낌인지 왜인지 표현할 순 없지만 살로 느껴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기에 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추구미가 정해진 것이.
그때는 전혀 몰랐다.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본래 내 모습인 줄 알았다.
어떤 일에 동요하지 않고 냉정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쉬워 보이지 않는 냉소적인 사람.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실수도 하지 않는. 책잡힐 일도 하지 않는.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수년이 지나,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새로운 장을 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과는 아주 달랐다. 그래서 그 시절이 힘들었던 거다.
그저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사느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랬어야 했다.
그런 사람이 됐어야 했다.
그건 나의 생존전략이었다.
몇 년 간의 합숙생활을 보내면서 나는 운동선수로서, 그 삶에 맞게 진화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그렇게 진화시켰다.
그리고 몇 년 뒤
난 골프가 싫다고 말하는 프로골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