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선수로서의 서막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by 김슬기



당시 나이 15세,


그전까지는 동네 연습장에서 혼자 깨작깨작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끔 도에서 열리는 시합에

마치 아버지 지인 분들과 연습라운딩 나가듯이

형식적으로 몇 번 나가본 경험이 다였다.


시합장에 가면 나를 제외하곤 모두 자연스러웠다.

작은 도에서 개최하는 시합이라 그런지 모두 끼리끼리 아는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도 내에서도 작은 지역에 살던 나는 시합장에서말 한마디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는 사람은커녕 부모님께서 나를 맡겼던 당시 프로님은 다른 프로님들이 하는 행동과 다르게

내 근처에 있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만난 아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 바빴다.


부모님들은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처럼 시끌벅적했다.

성적이 좋은 선수 부모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 ~는 ~ 아카데미 들어가곤 성적이 어떻더라’, ‘~는 요즘 성적이 왜 그렇게 안 나온대?’,

‘~프로가 잘 가르치더라’, ‘~는 레슨을 어떻게 하더라’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어쨌든 당시엔 그런 상황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머쓱하니 흔히 쭈글이처럼 카트 한 편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골프부에 들어가 합숙훈련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연맹에 선수등록도 하고,

본격적으로 전국중고등학생들이 모두 참가하는 시합도 그제야 처음 나가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던 새벽부터 하루를 꽉 채워 짜인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들(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된분석 프로그램조차도 없긴 했지만 당시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기본적인 것들임에도 배워본 적 없었던 관련 지식에 대한 학습,

내 또래 수십 명과 함께하는 훈련들.

그 과정에는 분명 버겁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속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이란 걸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말 골프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내 선수생활의 본격적인 첫 시즌을 맞이하는 해였다.

전지훈련에서도 그렇고,

이전까지 그 정도 강도의 훈련은 받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제대로 된 시합 경험이 없었던 나는 당시 제대로 된 기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연습라운딩에서 나오는 스코어와 시합에서 나오는 성적은 다르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었기 때문에

내가 시합에서 몇 개나 칠 것인지,

내 수준에 몇 개나 치면 괜찮은 성적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너~무 못 칠까 봐 긴장이 됐다.


시즌 첫 시합은 연맹에서 개최하는 시합은 아니었고

대학교 총장배였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내 수준도 몰랐기 때문에 시합마다 중요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뭐가 더 중요한 시합인지 따질 능력도 없었다.


시합 전 날, 그날의 훈련이 끝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시합에 참가하는 모든 동료선수들과 함께 팀에서 운행하는 대형버스로 시합장 근처 모텔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부터의 일정을 대비하고 잠자리에 들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룸메이트들과 떠들다가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로소 선수 같은 게? 된 것 같아서 들떴던 것 같다.


시합 당일, 이제 나는 떨림을 이야기하고 긴장을 나누고 응원을 주고받을 동료와 프로님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그들 중 한 명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녹아있다. 뭔가 진짜 선수가 된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들떴다.


그렇게 임한 시합.

어떻게 18홀을 마쳤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배운 대로, 훈련한 대로 열심히 열심히 성실하게 쳤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룰을 어겨 벌타를 받을까 봐 긴장하고,

중간중간 동반자 선수들의 샷을 보고 감탄하면서

금세 18홀이 끝났다.


그렇게 나온 스코어는

78타.


예선통과라는 결과를 얻어내게 되었다.


내 인생 첫 예선통과.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 70대가 그렇게 당연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지훈련에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최소 18홀을 돌면서도 70대는 나한테 그렇게 당연한 스코어는 아니었다.

명색이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선수라고 처음부터 잘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운딩이 너무 잘 풀렸다거나

운이 너무 좋았다거나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78 타라는 스코어가 나온 것이 신기했다.


시합이 끝나고,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우르르 연습장으로 돌아왔다.

그날 시합을 한 수 십 명의 선수들 중

예선에 통과한 사람은 나와, 내가 공을 정말 잘 친다고 생각했던 A언니. 단 두 명뿐이었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무척 기분이 좋았다.

부러워하는 목소리. 코치님의 달라진 대우도.


다음 날은 남고부의 시합이 있었다. 우리 팀에서 에이스로 취급되던 B오빠 혼자 본선에 올랐다.

큰 관광버스를 타고 움직일 정도의 인원 중 단 세 명만 예선에 붙었고,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 사이에 내가 껴있다는 게 묘했다.


긴장과 민망함, 흥분 같은 것들이 합쳐진 감정이었다.

아마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소수의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뭐, 더 특별한 결과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실망은 전혀 없었다.

사실 그때도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만한 데이터는 없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기대보다는 긴장이됐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첫 시합은 이만큼만으로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다.


'다들 전지훈련 다녀오자마자 첫 시합은 여러 가지로 적응이 안돼서 잘 안된다고 하던데.. 적응이 채 다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시작하는 건가?.. 나 정말 열심히 한 보람이 있나 봐. 열심히 하면 진짜 되는가 봐.'


그날의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선수가 될지 몰랐다.


다만, 앞으로의 내가 기대되는 훌륭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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