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내가 만난 건 무릎팍 도사였을까?

by 김슬기






상담장소는 삼성동의 한 아담한 오피스텔이었다.

박사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니신 중년의 여성분이었다.


엄마와의 통화에서

수많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여러 종목의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을 듣고, 그 선수들을 전담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데 고작 나 같은 사람이 가도 되는 건가?.. 좀 유난스러워 보이는 거 아닌가?.. 우스워보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진 분이셨음에도 그 인사에 밝은 미소로 화답이 잘 안 됐다.


부모님의 부탁으로 고모와 고모부가 함께 동행해 주셨었으나 인사와 소개가 끝나자마자 박사님께서는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잠시 나가서 기다려주시겠어요?”


고모와 고모부는 예상하지 못하셨는지 조금 심기가 불편한 안색을 드러내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얼굴도 자주 뵙지 않는 고모와 고모부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따뜻한 차랑 차가운 주스 어떤 걸로 줄까요?’



그렇게 단둘이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첫 만남 날짜가 잡혔을 때부터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 신경이 쓰였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되지?’

‘괜히 불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우려들이 무색하게 박사님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날 리드해 주셨다.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해 보이려나?‘

'나를 너무 부정적으로 판단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었으나 그럼에도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하려 했다.


박사님은 특별한 말씀을 해주시진 않았다. 언제부터 오면 된다라던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 것 같다던지 소견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이 끝난 뒤 약간은 어리바리한 상태로 인사를 나누고 오피스텔을 나왔다.



‘그냥.. 이렇게 가면 되는 건가?’



오피스텔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모와 고모부께서는 질문 공세를 하셨다.

조금 푼수셨던 고모는 박사님이 나가계시라는 말에 빈정이 상하셨는지 다짜고짜 사람이 별로 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저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식사를 하는 내내 불편할 정도로 캐물으셨지만 별 이야기 할 게 없었다.

왜냐면 진짜로 대수로운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질문을 들으면서 본격적인 질문이 언제 나올지 계속 긴장을 하고 있었다.

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질문들은 미지근한 온도의 내용들이었다. ‘이게 단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박사님과 통화를 하셨다고.

그리고 박사님께서 이야기를 나눠본 바, 내게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셨다.


들어보니 어머니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잡은 그 첫 약속에서부터 상담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어떤 상태인지 보고, 내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지 아니면 그저 일반적인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우려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확인절차 비슷한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대단한 선수들도 줄을 서서 받는 분이라고 하니.. 고객을 골라 받을 만도 하지..'

(실제로 상담이 시작되고 어느 날, 오피스텔 문밖에서 다음 상담 차례인 걸로 보이는 TV에서나 보던 유명선수를 마주친 적이 있다.)



어찌 됐건 첫 만남 이후 상담을 진행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어머니께 답변을 하셨다고.. 그렇게 본격적인 상담날짜가 잡혔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별 대단하게 뭐가 파악이 될만한 이야기는 안 했던 것 같은데.’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다.

상담이 있는 날엔 라운딩을 빠지고 연습 중간에 삼성동에 가서 상담을 받고 돌아와 다시 연습을 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유난스럽게 보이는 게 싫어서 프로님께만 말씀드렸고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게 되어도 굳이 뭘 하러 갔는지 말씀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삼성동. 이 오피스텔뿐만이 아니라 삼성동에 혼자 온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첫 시간에 비밀유지라던지, 앞으로의 일정과 흐름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날 나와 상담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보통 부모님께 상담문의가 와서 선수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땐, 본인의 판단에 매우 확신을 가지고 계세요. ‘우리 아이가 ~한데, ~래서 문제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선수본인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작 본인은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고민하고 있거나, 힘들어하고 있거나,

부모님이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계신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슬기양이랑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슬기양이랑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어머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 응하게 됐어요."


‘우리 엄마는 나를 파악하고 있다는 건가?..’



본격적으로 상담이 시작됐고, 매 상담마다 숙제가 주어졌다.

주어진 숙제를 하고 있노라면 내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처음엔 내 속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조금 겁도 났지만, 점점 나는 수요일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상담은 몇 개월동안 계속 됐고 많은 걸 바꾸어 가며 배워 나갔다.

시합 전 날, 시합이 끝난 뒤, 시합 중에 플레이 흐름에 따라, 연습할 때, 조바심이 날 때 등등 매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지 부끄러울 정도로 내 생각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조금씩 익혀갔다.


결과와는 별개로 내, 외부의 자극에 마냥 힘없이 흔들리던 내가 조금이 뿌리가 서가는 것 같았다.

순간순간의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되었고, 목표를 정하는 방법을 알게 되니 그 목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목표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렇게 이루어 나가는 스스로를 기특해 하기 시작했고,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상황에서 내가 들었던 생각, 그 당시의 기분들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러 과정으로부터 나라는 사람이 이상한 것도, 특이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히 나는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꽤 여러 차례의 상담이 지났을 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건 내 숨통을 틔워 준 정말 강력한 한 방이었다.

나는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그런 나를 꿰뚫은,

무엇보다 내게 꼭 필요했던,


내가 프로가 될 수 있게 해준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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