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기대와는 달리 특별한 일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생은 한 편의 영화나 엔딩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처럼 서사가 쌓이고 나면 해피엔딩이나 사이다 결말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었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뛰어난 사람들은 넘쳐난다.
이 정도 역경과 고난을 주고 그쯤 고생을 시켰으면 모든 걸 상쇄하고 또 다 잊고 뛰어들 만큼
달콤한 열매 하나쯤은 내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나 싶은데 인생은 그렇지가 않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시합이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라운딩이 끝났다.
이 빌어먹을 마음은 무뎌지지도 않는다.
새삼스럽지 않아져 버린 예선탈락의 결과를 얻은 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 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딸. 끝났어?"
"......"
엄마의 다정한 그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또 목이 메어서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 응 끝났어요..."
한참을 가다듬고 최대한 메이는 목소리를 숨겨 겨우 다섯 글자를 뱉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고작 숨소리만 들어도 엄마는 다 안다.
내가 슬픈지. 기쁜지. 아픈지. 힘든지.
"왜 그래"
"... 미안해서.."
이번엔 왜인지 솔직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안해서. 그래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냥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난 언제까지 맨날 미안한 존재여야 하는 걸까. 난 왜 그런 역할만 해야 하는 걸까. 나도 지긋지긋해.
눈물이 계속 나와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렇다고 전화를 그저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뭘 해도 적절하지 못한 행동일 것 같았다.
그때, 내 귀를 의심하게 한 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골프를 시작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내게 화를 낸 건. 그렇게 언성을 높여 얘기한 건.
"너 그러려면 골프 그만해! 엄마아빤 너 그러라고 골프 시키는 거 아니야.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애가 왜 고작 골프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고 맨날 울어. 그럴 거면 너 그만해 운동."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의 기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다. 엄마의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와 함께.
'?.. 내가 이걸 그만할 수도 있는 건가? 그런 삶을 선택할 수도 있는 걸까?'
그날이 처음이었다. 골프를 그만둔다는 상상을 해본 것이.
엄마 말이 맞다.
난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고, 뭘 하면 곧 잘하는 아이였다. 잘 몰라도, 잘 못해도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당근을 많이 받고 자라서 자신감이 넘쳤고 그래서 무언가를 하는데에 두려움이 없었다.
근데 그랬던 내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고작 골프하나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자체가 쓸모가 없어진냥 생각하게 됐을까?
까짓 거 그만둬버리면 그만인 걸.
왜 여태까지 진작 그만둬버릴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을까? 골프가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때까지 왜 매달리고 있는 걸까? 내가 원했던 게 뭐길래.
세계적인 선수? 그건 아니었다. 그건 어림도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되고 싶긴 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엄마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지만 그만하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음에도 전혀 슬프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어쩌면 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 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랐던 것 같다.
통화를 마치고 왠지 홀가분해지는 마음이 드는 걸 느끼며 이게 내가 원했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참 이상했다. 난 그만두고 싶었던 걸까? 아님 잘하고 싶었던 걸까?
도대체 내가 원했던 건 뭘까.
그 말을 듣고 '그럼 당장 그만둬야겠다.'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이제 내가 이걸 그만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날의 통화 이후, 골프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신기하게도 달라졌다.
지금껏 골프와 나의 관계가
절대 헤어질 수는 없어서 날 사랑해주지도 않는 상대에게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입장 vs 아무리 상대가 애걸복걸해도 더 이상 여지를 줄 마음도 남지 않은 차갑고 매정한 입장 같았다면
이젠 더 이상 무작정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시합을 임하면서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골프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 뭘 느끼고 있는지.
내가 골프를 계속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비록 내가 원하는 결과를 온전히 얻지 못하더라도 이 길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지.
그렇게 몇 개월에 걸쳐, 몇 차례의 시합들을 끝내고 난 뒤 그제야 확신이 섰다.
'나 이거 그만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