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호락하지 않아도, 누가 뭐래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이 사회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다.

by 김슬기





알바 면접을 보기 며칠 전 수시 면접이 있었다.

내가 원서를 넣었던 학과에서는 당시 프로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실기시험 면제가 주어졌기 때문에 다행히 면접 준비만 잘하면 됐다.


나의 23살.

수능은커녕 고3 때 학교에 몇 번이나 갔는지 기억도 안 났고, 수능시험이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도움을 받아 원서를 넣긴 했지만 도대체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뭘 물어보는지 알 턱이 없었다.

몇 명 없는 지인을 통해 해당 학교의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지만 전달받았던 내용들은 실제로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눈에 잘 들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되는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는 것이 없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면접 당일이 됐다.


복장은 최대한 단정하게 하는 게 좋겠지 싶어 블라우스와 슬랙스를 골랐다.

화장은 평소보다 훨씬 단정하게 했다. 아이라인도 짧게, 섀도우도 연하게. 입술도 평상시에 비하면 바르는 둥 마는 둥했다. 면접이란 걸 본 적이 없어서 이런 자리는 어느 정도로 격식을 갖추는 게 맞는지 감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차에서 혼자 대기를 하다가 시간이 되었을 때쯤 대기장소로 갔다.

딱 봐도 어린 친구들이 많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도 프로정도되면 떨어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하긴 했었는데.. 이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모르겠는데..'



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했을까?

골프웨어에 모자까지 좀 전까지 라운딩을 하다가 온 것 같은 복장을 한 사람, 교복을 입고 온 사람, 코트를 입고 온 사람 등등 다양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다가왔고 조교들의 안내를 받아 교수님들이 계신 한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 날이 내 인생 첫 면접이었다. 지금까진 어떤 것에 합격하기 위해서 이렇게 인터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어보시는 것에 최대한 정성껏 예의를 갖춰 열심히 대답하려 했다.

긴장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목이 막혀서 몇 차례나 당황했다.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어? 붙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며칠 뒤 기다리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바 첫날.


바로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둔 노트와 열심히 다려둔 유니폼을 들고 일찍 매장에 도착했다.

경험이 없지만 경험이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하고 싶진 않았다.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가며 열심히 배웠다.

포스기는 어떻게 쓰는 건지,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응대는 어떻게 하는지, 재고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세일즈는 어떻게 하는지.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라 조금의 변수만 생겨도 매니저님께 전화를 드려서 일일이 여쭤봐야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좋은 매니저님을 만나 다행이었다.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어서 조금은 덕을 봤다.

청소야 열심히 부지런히 하면 될 거라 생각해 큰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에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미 익숙한 단어들이 많아서 흡수하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가까이에서만 알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매출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니, 단지 내가 좋아하는 화장품을 남들에게 소개해주는 것 일이 즐거웠다.


실제로 입소문이 나서 나를 찾아 매장에 오는 손님들도 생겼다.

브랜드 세일시기에는 미어터지는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목이 완전히 나가기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매니저님에게 직영점에서 근무해 볼 생각은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이 일을 할 거란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하지 않게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일이 끝나고 늦은 저녁이 되면 가게 근처에 있던 한솥에 들려 도시락을 사서 집에 갔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여전히 긴장도 되고 말 그대로 노동을 한다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얼마 전과 180도 달라진 생활이 마냥 즐겁고 재미있었다.


하루하루 내가 이런 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매니저님이 쉬는 날이셔서 사장님과 함께였다.

사장님은 50대 초중반정도 되신 여자분이셨는데, 화장품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으셨고 매장은 거의 매니저님께서 관리하고 계셨다.


혼자 매대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의 남편분이 매장에 오셨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친구네? 새로 온 친군가?"



그렇다고 인사를 하고 하던 매대 청소를 이어하고 있는데

두 분이서 카운터에 나란히 서서 매장 입구 쪽 매대를 청소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등 뒤로 하시는 말씀들이 들렸다.



"친구는 원래 뭐 했나?"

사장님의 남편 분의 질문이었다.



"네? 아 저는.. 운동했었어요."



무슨 일을 했었냐는 말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운동을 했다고 하면 무슨 운동을 했냐고 물어볼 게 뻔하고, 골프를 쳤다고 하면 놀라는 듯한 그 리액션이 왠지 불편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상황에 대해 물어볼 것 같아 나를 어떻게 볼지 의식이 되어 어떤 게 적절할지 아직 혼란스럽다.



"오~ 무슨 운동?"



매대를 닦던 걸레를 들고 어설프게 서서 멋쩍은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짧은 순간 주저하고 있는데,



"골프프로래"



내가 입을 떼기 전 사장님이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날이 서있는 듯 들렸다.


면접 당시 빈 이력서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 아무 경험도 없는 나를 뽑아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원래 운동을 했었고 그대로 선수생활을 쭉 하다가 은퇴를 했으며 그래서 딱히 이력서에 적힐만한 경력이 없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했다.


사장님은 전형적인 드라마에 나오는 진상 아주머니의 얼굴과 성격을 가진 분이셨다. 무슨 말을 할 때 기본적으로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장착하고 계셨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셨으며, 매장에 오시는 손님들에 대한 험담도 자주 하셨다. 원래 말도 꽤 무례하게 하시는 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비슷한 또래의 매니저님께서도 사장님을 매우 싫어하셨다.

하지만 매일 같이 만나야 된다거나 매장에 종일 계시는 편도 아니셨기에 내게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되진 않았다. 그저 무시하면 됐으니까. 그리고 매니저님이 워낙 좋은 분이셔서 그정도는 개의치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단순한 말을 오해해서 받아들인 걸까?



" 와, 골프? 오 그렇구나.

그럼 선수하다가 프로까지 한 거?"


이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분은 눈치도 없이 계속 말을 붙이셨다.

어른이 말씀을 하시는데 등지고 닦던 매대를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화를 계속하고 싶진 않아서 뒤돌아 카운터 쪽을 볼 수도 없어 계속해서 어설픈 자세로 하던 일을 하지도 못한 채 걸레를 두 손으로 든 채 엉거주춤 멋쩍게 웃고나 있었다.



"네.. 하하"



"멋있다~ 골프프로 대단하네~"



남편분의 말엔 아무런 뼈가 없었다. 그저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볼 때 골프 친다고 하면 보던 반응 정도였다. 그저 멋쩍어지는 그 정도 반응.

이번에도 역시나 멋쩍게 웃어 보이며 이젠 다시 하던 일 해도 되겠지 하며 다시 뒤를 돌았는데,

그 순간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뭐 해, 지금 여기서 청소하고 있는데."



속삭이려는 노력도 없었다.


저 말을 '타인'에게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듣게 될 일이 생길 줄이야.

이런 사람들이 진짜 있구나.


등뒤로 꽂힌 비수에 짧은 순간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실 상처받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황당하여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나?


그리곤 못 들은 척, 하던 걸레질을 계속했다.


그 뒤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남편분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내가 그 말에 잠식되어 버려서였을지도.



역시나 말해서 좋을 게 없구나.

이래서 내가 말하기 싫었었나. 이럴 줄 알고.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사장님이 들어가시고 그 뒤로도 혼자 매장을 지키면서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앞으로도 난 저런 인식을 받아가며 살아가야 되는 걸까? 그럼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던 사람이라고 하는 게 나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난 나이가 많고 그마저도 없는 셈 치기엔 이룬 것이 너무 없다.


손님을 응대하면서도 어떤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도 계속 그 생각에 덮쳐져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우울하다는 생각 같은 것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슬프다. 속상하다. 그런 생각과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 사람이 준 상처를 그 사람의 의도대로 곧이곧대로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려는 노력이었을까?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난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그때마다 지금처럼 상처받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상념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명쾌한 해답에 닿았다.



'그래서 이런 것 때문에 다시 돌아갈 거야? 그게 낫겠어?'



이 생각에 닿고 나니 모든 건 굳이 답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겐 그게 제일 최악이었다. 그것보다 피하고 싶은 건 없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차피 돌아갈 길은 없어. 이젠 부딪히면 살아가는 만이 유일한 답인 거야.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할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싫으면 돌아가는 거야.'



적어도 내겐 최고의 해답이었다.



어쩌면 난 내가 있던 세계에서 나오면서부터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각오를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더 단단해져가고 있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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