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싫어요.

터져 나온 눈물의 의미

by 김슬기





전공과목 중 하나였던 그 강의는 체력훈련과 건강관리를 주제로 한 실기 과목이었다.

꽤 유명하신 스케이트선수 출신 교수님의 전공수업이었는데, 오리엔테이션부터 이상한 과제를 내주셨다.


다음 주 정식 첫 수업 때 발표할 자기소개를 PPT로 만들어 오라는 것.


놀랍지도 않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하는 1분짜리 자기소개도 싫은데, 그걸 PPT로까지 만들어오라고요?..'



오그라드는 자기소개보다야 차라리 강의를 듣는 게 더 낫고 자료수집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열 번도 더 생각했지만,

하라면 해야지 뭐 어쩌겠나.


몇 번 만들어 보지도 않은 PPT를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막상 발표까지 해야 되는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어서 며칠을 공들였다.

인터넷을 뒤져 꽤 그럴싸한 템플릿을 다운로드하여 오밀조밀 사진과 텍스트를 채워 넣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자라왔는지, 살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꿈은 무엇인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내용으로 꾸려야 하는 과제였다.


이것저것 채우다 보니 그래도 꽤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내 과제를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최악의 과제는 아닌 것 같네?'




발표 날이 됐다.


나란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는 타입은 아닌데, 도대체 왜인지 발표를 할 때면 염소소리가 나기도 하고 심장이 미치게 빨리 뛸 때가 있다.

그래서 발표를 할 때마다 거의 대본을 만들어했다. 자기소개가 뭐라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본까지 만들어 집에서 리허설도 여러 번 했다. 기왕 해야 하는 거라면 뭐든지 잘하고 싶다.



내 앞에서 여러 사람의 발표가 끝났다.

내 걸 만들면서는 남들이 보기에 오글거릴까 봐, 이상하게 보일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과제를 보고 있자니 흥미로웠다.

생각과는 달리 재밌는 과제였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됐다.

대본에는 피피티를 넘길 순서까지 맞춰 치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발표는 순조롭게 시작됐다.


흥미로웠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최초로 금강산에서 열렸던 경기에 스텝으로 북한에 갔던 이야기.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했다가 떨어진 이야기.

춘향이 선발대회에 나갔던 이야기 같은 것들을 했다.

자료를 준비하면서 새삼 내가 얼마나 나서기 좋아하는 애였는지. 명랑한 애였는지 깨닫기도 했다.



"저는 무엇이든 시도하는 걸 즐기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 저는 제가 수학을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회를 그렇게 못하는 줄 몰랐어요. 성적표가 뻔히 나오는데도요. 왜냐면 사회는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상관없이 사회를 좋아했습니다. 성적이 처참했어도요.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명백히 다른 건데도,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고 그렇게 용기 있는 저의 모습이 스스로 꽤 멋지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 덕분에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만한 시도들을 용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나름 이것저것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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