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일까 사랑일까

그토록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 무엇일까

by 김슬기







"그냥.

그냥 싫어요."



복합적이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며,

깊게 생각하고 싶지조차 않아

"그냥"이라는 대답이 가장 적당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 교수님과 여러 차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을 때, 교수님은 네가 말했던 것처럼 사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다만 네가 받았던 상처가 컸고, 그게 아직 아물지 않아서일 거라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함부로 이야기하시죠?'



당시 내가 골프에 대해 느끼던 감정의 강도로만 따지면 그렇게 이야기하고도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부정할 수 없었던 건 내심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골프를 그만두고 6개월이 넘도록 골프채를 방구석에 처박아 둔 채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꺼내야 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진 단 한순간도 들춰보고 싶은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거실에 골프채널이 틀려져 있을 때면



"아빠, 다른 거 보자~"



조금도, 한순간도 골프와 가깝고 싶지 않았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남이 치는 걸 보는 것조차도 불편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스스로에게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어쩜 이렇게 생각도 안 날 수가 있지?'



그러나 교수님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 어이가 없거나, 놀랍거나 하지 않았다.


왜인지 들킨 듯 부끄럽기도 하고 안도감도 드는 묘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에요. 교수님.

진심이에요. 저는 진짜 골프를 싫어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하나도 그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아쉽지 않을 수가 없잖아?


맞아, 난 골프가 싫어.



근데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교수님이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사실은 그만큼 뻔한 감정인 걸까?

다들 느끼는 평범한 그런 감정인 건가?



인정하기 싫지만 그 감정이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은 위해 내가 골프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설명하자면

‘짝사랑하던 상대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한 뒤 사실 그렇게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정신승리'와 비슷할 것이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인정이랄까)


진심을 다했으나 결국 맺지 못한 결실.


하지만 이제 와선 너무 진심이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럽게도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면 조금 덜 진심일걸.

그냥 대충 할걸. 그랬으면 상처도 덜 받았을 텐데.


흑역사가 너무 많아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그때의 내가 그립기도 한.








애증이란 감정을 내가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애증 愛憎 :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그리고 어떠한 대상을 향해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는 심리 상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런 게 애증이라고.

그러나 난 지금까지도 이 감정이 과연 애증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니라고 생각해.


시간이 지나 레슨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는 지금, 내가 이 일을 좋아서 시작했다면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또 그렇다고 분명히 절대 아니라고도 하지 못하겠다.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졸업이 다가오고,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코 앞까지 닥치기 직전까지

내가 제일 하기 싫었던 일은 "레슨"이었다.


같은 과에 선배들이 펜도 없이 강의실에 들어오고,

시험땐 아무렇지 않게 백지를 제출하고 1등으로 강의실을 빠져나온 걸 자랑하고,

그렇게 내내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졸업할 쯤이 되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레슨 자리를 알아보는 사례들을 너~~ 무 많이 보면서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내게 레슨이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가장 쉽고 만만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다양한 강의를 듣고, 해볼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이 전공에서 높은 학점으로 졸업한다고 한들 내 미래를 넓히는 것에 과연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전공을 선택해 학교에 들어왔고 학교생활동안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선택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4학년이 되어선 중국어를 시작해서 강의가 없을 땐 늘 도서관에 있었다.

소소하게 자격증도 땄다.

별 것 아니어도 "골프"뿐인 내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다.

골프 말고도 나를 채울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내겐 너무 짧았던 4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입학 전부터 발버둥을 쳤지만 막상 졸업이 닥치니 용감한 도전을 하는 것은 너무 까마득했다.

당장 밥벌이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더 좁아졌다.


결국 그 생각에 닿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래도 당장 제일 잘하는 건 결국 그건데..'



학교를 다니면서 골프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정신과 마음은 조금씩 치유받을 수 있었다.

그것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더 적극적이지 못해서였을까?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을 만한 관심이 가는 것을 찾아내진 못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고민 끝에 처음 마음먹었던 건 중국행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한국여자프로들의 인기가 좋아, 큰돈을 어렵지 않게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래, 그건 단순히 레슨 하러 가는 일은 아닌 거니까.

레슨은 수단일 뿐인 거야. 유학 가서 용돈벌이로 레슨을 하는 거잖아? 가서 또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지도 몰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현실타협과 자아실현을 모두 만족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뭘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비난하던 그들과 같은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

그토록 싫어하는 골프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하게 됐다는 것?


하지만 어쨌든 그런 계획도 결국 무산되어 버렸다.

그 해 겨울이 바로 코로나가 퍼진 그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 겨울은 정말 힘들었던 겨울이 됐다.

코로나가 퍼진 19년 그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하늘 길이 막히고, 더군다나 중국이었기에 결국 모든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다.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다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학교에 들어갔고 졸업까지 했는데 결국 당장 현실에서 달라진 건 없었고, 나이는 더 먹었는데 이젠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줄 것도 없었다.


얼마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불안감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원래 한 번 다쳤던 부위가 더 쉽게 다치는 것처럼 마음도 그런 건가?

또 내 쓸모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곤 어느 순간부터 숨 쉬는 게 자꾸 힘들어져서 결국 병원을 찾아갔고,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엄마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다 큰 딸을 안아주며 위로해 주셨다.



'우리 아가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나는 환장하게도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회복하며 지내던 어느 날

동기의 소개로 신규오픈하는 연습장을 소개받았다.

레슨을 하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지만 당장 일을 시작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은 분명했다.

그 당시엔 어떤 일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싫어하던 레슨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머릿속은 같았다.



'이 일은 수단일 뿐이야. 어쨌든 이것도 내 자산이니까. 안 그러면 내가 보낸 시간과 노력과 돈이 아까우니까. 내가 진정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그때까지만 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배워나갔다.

대학원에 간 것도 거창한 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심리학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천천히 회복하며 치유받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겪었던 시간과 감정을 자세히 바라볼 자신이 없었고 마냥 피하고 싶어,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을 하나로 뭉퉁그려 “싫다 “는 단어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 안엔 내게 보낸 시간 속에서 쌓인 섬세하고 예민한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보이는 것들은 조금 더 선명하고 명확해졌다.


어쩌면 모든 게 운명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시간들 속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고 괴로웠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 취약한 사람인지, 어떻게 치유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필요할 땐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만큼 타인의 마음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 시간과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젠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하지 않는다.






골프를 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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