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lsim Mar 08. 2019

효율적인 아침식사

30일간의 아침식사 기록

아침을 직접 차려먹는다는 것은

효율일까 비효율일까?


아침을 직접 차려먹기 시작한 후 주위에서 효율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요즘처럼 배송서비스로 건강한 음식들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좋은 시대에, 게다가 혼자 사는 사람이 굳이 출근하기도 바쁜 아침에 1시간 가량 시간을 내어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나도 그런 부분에 대해 지불하는 것을 아끼는 편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내 체질에 맞는 건강식단으로 전문 요리사가 조리해서 1인식으로 만들어주는 곳을 찾아내어 아침밥을 시켜먹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효율적인 아침식사' 라는 것을 시간투자와 비용의 관점으로만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개선이었다. 

면역질환을 어릴 때부터 30대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앓아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Photo by Caroline Attwood on Unsplash



1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 

내가 어떤 체질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음식이 내 몸에 잘 맞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2 내 몸을 스스로 돌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면역력이 워낙 약한 상태로 오랜기간을 살다보니, 내가 피곤하거나 몸이 아픈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건강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조금만 푹 쉬면 몸이 나아진다는 것을 알고 휴식을 취하지만 오랫동안 아픈 상태로 있다보면 내 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남들이 쉬는 만큼 잠을 자고 쉬어도 여전히 아픈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 전에 나는 수액을 아침에 맞고 출근할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일을 그만두더라도 쉬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병원비와 약값이 걱정이었고 얼마나 쉬어야 어릴적부터 아프던 내 몸이 나을 수 있는 것인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어떻게 수습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혼자 사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갑자기 월급이 끊어지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팠던 내 몸이었기에 늘 그렇듯 아프다고 해서 해야하는 일을 중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나를 위한 식단을 고민하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매일 아침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내 취향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1 매일 나의 몸과 음식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 아침밥을 위한 식재료를 선택한다. 

나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하다보니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이 느끼고 고민하게 된다. 


아침식사라면 왠지, 브런치처럼 식빵을 굽고 스크램블과 베이컨으로 보기좋게 셋팅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말 내 몸을 위해서 내가 대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해보니 나는 밀가루나 짜고 기름진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서 먹고 나면 항상 불쾌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급적 한식이나 위장에 자극이 적은 식물성 단백질 위주의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몸이 원하는 것을 찾아 식재료를 고르다 보니 평소 잘 먹기 않았던 제철 나물이나 도토리묵이 나의 위장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음식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인스타나 주변 친구들이 선호하는 아침 식사나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매우 유행중인 브런치 메뉴가 보기도 좋고 먹기도 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나의 음식 취향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많이 먹는 아침식사 메뉴 중 하나 Photo by Mae Mu on Unsplash


2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철마다 제철 음식을 먹으며 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시각, 촉각,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매일 갖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상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게 하는 또 다른 명상의 시간과도 같다. 


도시에서 바쁘게 출퇴근을 하며 사는 내가 아침을 해먹지 않았을 때에는, 봄이 오면 건조하고 여름이 오면 더웠을 뿐 계절의 변화나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삶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흙이 묻은 당근을 씻어낼 때의 흙냄새가 내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봄에는 냉이나 취나물을 사서 다듬어 먹고, 여름에는 열무국수에 얼음을 동동 띄우고, 가을엔 단감을 꽃모양으로 잘라 차려보기도 하고 겨울에는 순두부나 콩비지를 사다 찌개를 끓여 먹는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내 몸을 생각하고 내가 씹어먹는 음식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지 집중하며 나를 돌본다. 그래서인지 일년에 두어번 짧게 감기만 걸리는 정도로 몸이 많이 건강해졌졌다.


그래서 나에게 아침식사는 단지 아침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바쁜 일상속에서 잠시라도 나 스스로를 마주하고 내가 나를 대접하는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며칠 전 냉이를 다듬어 차린 아침식사



공지영의 '엄마의 레시피’ 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 10분을 위해 집으로 가는길에 길모퉁이의 작은 슈퍼에 들러 넓적한 어묵과 두부를 사거라. 맛있는 가을무가 있으면 그것도 하나 사자. 가을무는 다듬어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하면 한 달쯤은 두고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음식에 넣기 위해 써는 동안 하얗고 물 많은 부분은 깎아 먹어봐. 배보다 시원하고 달아. 무가 다이어트와 배변에 좋다는 것은 당연히 알겠지?


그렇다. 산다는 것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선하고 보람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나를 위한 밥 한끼를 준비하여 먹는 시간이 

나 스스로에게 선하고 보람된 순간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아침 나를 대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