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아침식사 기록
*이 시리즈는 2018년 7월 1일부터 30일까지 기록했던 글입니다.
도토리묵밥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백합의 향기에 미소가 지어졌다.
제철 음식이 몸에 좋은 것처럼 제철 꽃도 저렴한 가격과 계절에 어울리는 향으로 마음에 평온을 준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도토리묵밥이다. 도토리묵은 대부분 차갑게 조리해서 먹지만 따듯한 성질의 식재료라서 몸을 따듯하게 한다. 그래서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거나 생리통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도토리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아콘산이라는 성분은 체내 유해한 독소나 중금속 배출에 탁월한 기능을 한다. 아콘산이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에 숙취 해소에도 좋고 간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칼륨이 많아 혈관 내 나트륨을 배출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 콜레스테롤 배출이나 동맥경화 같은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에도 좋은 식재료이다.
한국의 산에는 도토리가 매우 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에도 도토리묵을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도토리묵은 높은 온도나 습기에도 쉽게 상하지 않고 영양분도 풍부하여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먼 길을 떠날 때 가족들이 꼭 챙겨주었던 음식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보관해도 꽤 신선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자취하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식재료라고 생각한다.
아침을 먹기로 결심했지만, 매일 아침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럴 때는 그냥 두유에 도토리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말아먹자. 깨를 조금 뿌리면 더 고소해진다. 시리얼이나 그래놀라보다 위장에 훨씬 부담이 덜하고 영양분은 많다. 밍밍한 맛을 싫어한다면 김치를 얹어먹으면 정말 맛있다.
아침을 먹기 시작한 초반에는 약콩 두유 10팩을 사다 놓고 늦게 일어났거나 귀찮음이 밀려오는 날마다 약콩 두유에 도토리묵과 김치를 말아서 먹었다. 거기에 프로틴 바나 과일을 곁들이면 균형 잡힌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나는 어제 과음을 하기도 했고, 여름이라 시원한 국물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에 도토리묵밥이 떠올랐다.
멸치를 볶아 (우려내기 전에 멸치를 볶으면 비린내가 사라진다.) 다시마와 함께 끓여 육수를 우려냈다. 육수가 만들어지는 동안 계란은 노른자만 분리하여 지단을 만들고 깻잎, 오이와 함께 채 썰었다. 김치는 참기름과 소금을 조물조물하여 준비하고 도토리묵은 먹을 양만큼만 잘게 썰어 준비했다.
도토리묵밥을 시원하게 먹고 싶었기 때문에 뜨거운 육수를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히는 동안 중간 설거지를 하여 주방을 정리했다. 준비할 것이 많은 음식을 할 때에는 꼭 중간 설거지를 한번 한 뒤에 나머지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깨끗한 주방에서 완성된 음식을 먹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나는 한 시간 동안 도토리묵밥을 먹기 위해 썰고 닦고 움직였다. 밥이 완성된 후에는 테이블 매트를 깔고 수저받침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밥을 먹는 데에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번 주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밥을 직접 해 먹는 행위가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좋은 퀄리티의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시간도 아끼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효율’이라는 것이 꼭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물이 많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매일 아침 내가 먹을 야채와 식재료를 물로 씻고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만든 도토리묵밥은 육수의 맛이 내가 기대한 것보다 싱거웠지만 들어간 식재료 하나하나의 신선도나 청결함을 나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만들고 십 분 만에 먹어치운 아침밥이었지만 그 과정 자체로 나는 오늘 또 행복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다음번 도토리묵밥은 좀 더 보완해서 싱겁지 않게 만들어야겠다.
도토리묵밥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오늘 아침 기록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