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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예슬 Mar 12. 2021

괜찮지 않았던 날들에 대하여

   별일도 아무 생각도 없을 때 무작정 키보드를 두드려보고 화면을 활자로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써야 하는 의무도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손끝에 닿는 키보드가 타닥타닥 눌리는 소리를 듣고, 화면에서 자음과 모임이 만나 만들어가는 움직임을 보는 이런 행위가 이유 없이 좋고 이유 없이 하고 싶다. 마음속으로 열 번 정도 '하고 싶다!' 소리치면 한 번 정도는 휴대폰 메모장을 열거나 노트북 화면 앞에 앉는 것 같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기도.


   주 4일 일을 하고 난 후 이 패턴에 맞추는 것도 꽤 적응이 필요했다. 해오던 일을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과 하는 건 처음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스스로 3개월이라는 적응 기간을 정해 조급하지도 여유롭지도 않게 적응해 나갔다. 프리랜서 방송일이 그렇듯 넉넉한 생계를 유지하려면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한다. 적응 기간 후에는 금요일 하루 또는 나머지 3일을 어떻게든 다른 일로 채워보려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하는 만큼 쉬어야 하는 주 4일이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쳐(?) 내야 하는 업무의 강도는 꽤 밀도 있는 작업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희한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딜 가나 무얼 하든'이라고 단념하려 해도 그 사람들에게만큼은 매일이 새롭게 리셋되는 기분이었다. 내 입맛에 맞는 일과 사람을 바라지 않았다. 지금도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작 한숨 돌려본다. 고작 한숨.


   이 한숨에 담긴 지난 6개월의 시간을 펼쳐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 한 곳에 모아두려고 한다. 7개월째 맞이할 날들을 걱정하기보다 놀람과 분노, 번뇌와 깨달음 등의 단어를 던져주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봐야겠다. 그렇게 나의 글을 잃지 않고 돌보아야겠다. 봄비가 내린 뒤 추적추적한 공기만큼이나 차가운 공기와 따스한 온도가 적당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내 인생이라는 노트에 우리라는 글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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