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예슬 Mar 30. 2020

생크림

생크림

   생크림을 좋아한다. 생크림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식감과 달달함이 좋다. 생크림이 발려있거나 들어 있는 빵과 케이크 종류라면 다 좋았다. 아니, 다 먹었다. 스물셋에 맞이했던 생일날에는, 케이크만 종류별로 5개나 선물 받은 적도 있다.  생크림을 향한 애정은 빵뿐만 아니라 커피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인 핸즈커피에는 ‘휘핑크림 카푸치노’라는 메뉴가 있다. 이름에 적혀있는 대로 커피 위에 휘핑크림이 올라간다. 다른 곳의 휘핑크림과는 다르게 더 부드럽고 쫀쫀한 느낌이었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단맛이 에스프레소와 아주 잘 어울린다.  핸즈커피는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 총 60개의 도장을 모아야 했다. 멤버십이 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고 듣고 보는 성향이라 어느새 도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60잔 중 55잔 정도는 아이스 휘핑크림 카푸치노였을 것이다. 계획에도 없던 도장을 다 모았을 무렵, 종종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와 대구를 가게 되었다. 기차에서 어떤 카페를 가볼까 검색하다가, 핸즈커피 본점이 대구라는 걸 알게 되었고 우리의 행선지는 핸즈커피 본점이 되었다. 그렇게 굳이 굳이 카페 본점에서 멤버십 카드까지 발급받았다. 생크림을 향한 나의 애정에서 시작된 재미난 추억 중에 하나이다.


야금씨 이야기

나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음료는 많이  마신다. 그래서 카페에 가면 대부분 아메리카노나  주문한다.  그런데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또한 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주문한다. 크림이 올라간  몽실몽실한 모습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는데 커피랑 같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 편지 등도 같이 담아보았다.

 요즘엔 크림이 올라간 커피 메뉴들이 유행이기도 하고 비엔나커피와 아인슈페너, 콘파냐와 같은 커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카페모카가 아닌 다른 커피 위에 생크림을 올려서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종종 초코나 캐러멜의 단 맛이 나는 커피는 싫고, 그저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더 좋아하는 달달한 생크림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위에 휘핑크림을 추가해서 먹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나에겐 어느 카페에서든 주문 가능한 메뉴 레시피가 있다. 바로, 샷 추가한 아이스 바닐라라테 위에 휘핑크림을 산처럼 쌓아 먹는 것이다.  한창 이 메뉴를 사랑했을 때, MBC 방송아카데미를 갓 수료하고 SBS <K POP STAR 3> 리서처로 일하고 있었다. 출근해서 배가 고프거나 일하는 중에 당이 떨어질 때면, SBS를 뛰쳐나와 맞은편 CBS 건물 1층에 있는 이디야커피를 즐겨 찾았다. 그 당시 엑스트라 사이즈가 처음 개시되었고, 막내 중에서도 막내인 리서처의 벌이로는 가성비 딱 좋은 곳이었다.  출근하고 어김없이 당이 떨어졌던 날, 나는 한걸음에 이디야커피로 달려갔고 생크림을 먹기 위한 메뉴를 주문한 적이 있다. 그때 직원분의 표정과 제조해주신 커피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이스 바닐라 라테 엑스트라 사이즈에, 샷 하나 추가해주시고요. 휘핑크림도 올려주세요."

내 주문을 따라서 화면을 터치하는 직원분의 손은 0.5초 정도 허공에서 두 바퀴의 원을 그렸고,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당황한 얼굴로 끝까지 친절했던 모습이 괜히 미안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컵에 담긴 커피의 양만큼이나 휘핑크림을 쌓아 올려 주셨다. 해발고도가 꽤 높아 보이는 산처럼 뾰족하고도 견고하게 말이다. 결과물에 매우 만족했고, 다시 생각해봐도 감사할 따름이다.  차가운 음료에 올려진 휘핑크림은, 얼음 위에 안전하게 안착하고 있어 얼마든지 이리저리 떠먹을 수가 있다.

하지만 뜨거운 음료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특히 뜨거운 원두커피 위의 생크림은 덩어리째 둥둥 떠 있다. 빨대나 티스푼으로 한 입씩 떠먹기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생크림은 자꾸 커피의 표면과 분리되어 빨대를 비껴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녹지 않아 다행이지만 사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마도 이때가, 새침한 생크림의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생크림의 매력? 나는 왜 생크림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음식의 맛만큼이나 식감을 좋아해서 버섯이나 무말랭이, 젤리나 꾸덕한 브라우니 등을 더 찾는 편이다. 그중 생크림 역시 보드랍고 폭신한 식감이 달콤한 맛과 어우러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좋다. 보드랍고 폭신하고 달콤한 생크림이. 첫 번째로 생크림의 그런 면이 진지하게 좋은 것 같다.  핸즈커피의 ‘아이스 휘핑크림 카푸치노’를 50여 잔씩 채워가던 때를 돌아보다가 그때의 사람들과 상황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러다가 혼자 추억에 취해 아이스 휘핑크림 카푸치노 한잔 한잔과 함께했던 분위기가 떠올랐다. 단순히 좋아했던 맛과 식감을 통해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 만들어낸 민간요법 혹은 샤머니즘 적인 믿음의 영역이었는지, 괜스레 보드랍고 폭신한 생크림과 비슷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생크림이 가득 얹힌 커피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던 깊고 넓은 이야기들. 진로를 고민하던 동생과 썸 타던 이성과 사귀게 되었다던 친한 언니의 소식, 묘한 뉘앙스로 내게 진심을 고백하던 친구 녀석과 맘속 저 밑에 삭혀두었던 섭섭함을 토해내던 사람까지. 어떤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지, 때마다 우리 사이엔 생크림이 있었다.  때론 얼어붙은 공기를 부드럽게, 한껏 달아오른 설렘을 더욱 폭신하게. 지금에야 알아차린 그때의 달콤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바로, 생크림이다. 생크림인 것 같다. 아니 생크림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건강하지 못한 나의 위와 식습관 때문에 예전에 비하면 생크림을 먹는 수준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생크림을 찾는다. 노래방에 갔을 때 부르지 않으면 괜히 찝찝한 18번 노래처럼, 나는 생크림을 부른다. 어느 카페의 디저트 쇼케이스 앞에서나 빵집에 차려진 새하얀 생크림 메뉴 앞에 서기만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1번은 생크림이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생크림의 보드랍고 폭신하며 달콤함을 닮아 그런 사람이고 싶거나, 생크림의 보드랍고 폭신하며 달콤함을 담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작은 바람을 잔뜩 실은 마법의 주문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