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예슬 Mar 18. 2020

프롤로그

oh, my bread!


프롤로그


  부산에 살았지만 먹고 싶은 빵과 디저트를 먹기 위해서는 서울과 다른 지역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와 가장 친한 친구와는, 쌀이나 고기 같은 식사 메뉴로 제대로 된 한 끼보다 빵을 먹은 시간이 더 많았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지난 9월, 둘이 함께 알고 지내는 지인의 집들이 자리였다. 친구가 보쌈을 아주 야무지게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네가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노?”라고 말했다. 정갈하게 쌈을 싸던 친구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렇게 밥을 먹으러 다닌 적이 없었다아이가. 흔한 삼겹살 한 번 구워 먹으러 다닌 적도 없을걸? 늘 빵만 먹으러 다녔지.”


“.. 아.. 맞나..”


  새삼스러운 느낌에 잠시 할 말을 잊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빵 말고 다른 음식을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기보다 우린 늘 빵을 먹었다. 길을 가면서도 먹고 꼭두새벽에도 먹었다. 샌드위치든 바게트든 케이크든 뭐든, 빵이란 빵들은 모조리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믿고 먹는 예슬이 빵’이라고 이름 붙여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였다.


  새로 도전하고 싶은 빵이 생겼을 때나, 먹어야만 하고 먹고 싶은 빵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난 10년 동안, 내가 먹었던 빵을 나보다 더 많이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그런 친구다. 이번 ‘빵’이라는 주제를 선정했을 때, 나도 잊어버린 나의 빵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고 같이 좋아해 주는 이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빵을 먹고,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고, 나보다 더 짙은 기억으로 여겨주는 10월의 신부 나의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찐하게 전하고 싶다.


야금씨 이야기

빵을 사 올 때 종이 빵 봉투에 넣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 봉투를 들고 가는 게 괜히 설렌다. 그 빵이 내가 먹기 위해 사든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사든 선물을 포장한 것 같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프롤로그 그림은 빵 봉투를 오픈하기 전 모습을 그렸는데 <비정기적 빵 이야기>를 시작하는 설레는 마음을 같이 담아 보았다.




오 마이 브레드!



  어렸을 때부터 나의 취향은 여러모로 확고한 편이었다.

TV 프로그램으로 예를 들어보면, 평일 아침이나 늦은 오후마다 내가 애청하던 채널은 TV 유치원이나 만화영화가 아니었다. 아침드라마나 시트콤, 미니시리즈 드라마였다. 특히나 주말 아침이면, 모든 어린이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꼭 본다던 <디즈니 만화 동산>을 한 번도 끝까지 봤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주말 아침 고정 프로그램은 바로, 안재욱·김혜수가 주연이었던 MBC 주말 아침드라마 <짝>이었다. 그 무렵 평일에는 Olive 채널의 시초였던 푸드채널의 애청자였다. ‘스타 셰프’라는 말도 없던 시절, 지금의 백종원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유명했던 영국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 먹곤(?) 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3사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또래 친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만화영화, ‘달의 요정 세일러문’ 주제가는 몰라도 유튜브 온라인 탑골공원에 나올 법한 탑골 가요들의 가사는 줄줄이 외우고 있는 그런 어린이였다.


  1세대 아이돌이 전성기를 누릴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요즘 아이돌 문화와는 사뭇 달랐던 90년-2000년대에는, 유명 아이돌이나 인기 연예인 이름의 빵과 과자가 처음 출시되기도 했다. 핑클빵, 국진이빵이 대표적인 예이다. 제품의 맛이나 모양과는 관계없이, 해당 연예인의 얼굴 사진 또는 사인 스티커가 들어 있는 빵이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 하나만으로 어떤 맛이 되었던지 사고 보는 빵이었던 셈이다. 나는 빵의 종류와 맛을 중요시 여기던 어린이였기 때문에 사 먹어 본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한다.


  남다른 유명세와 사인 스티커는 없지만, 나에게도 내 이름을 딴 빵들이 몇 가지가 있다. 일명 ‘믿고 먹는 예슬이 빵(믿예빵)’. 발음하기는 어렵지만 이 이름의 가용 범위는 나와 가까운 소수의 지인, 그중에서도 한두 명 정도와 나누고 있다.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공유가 가능하다. 이번 <비정기적 빵 이야기>를 통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믿예빵 리스트도 공유하려고 한다. 이 정보는 개인적인 기호와 취향(입맛, 가성비, 가심비)에 기반을 둔 것으로 정답도 광고도 아무것도 아님을 먼저 알려드린다. 덧붙여 맛있는 빵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빵과의 추억을 눌러 담은 페이지라는 말도 전하고 싶다.



  굳이 빵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사랑하는 무언가 혹은 사람과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나와 함께 꼭 한 번 써 내려가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비정기적 빵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