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let it go

호의와 침해 그 사이 어딘가.

by 스미다


매서운 바람을 이기며 납덩이 같은 노트북을 둘러메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려는 찰나, 웃는 얼굴로 나의 하루에 차가운 얼음물을 붓는 한마디.

"좋겠다, 쉬어서. 아, 출근하기 싫다. 나도 쉬고 싶다."

뭐 적금인 양 한 달에 한 번쯤은 들었던 말이라 이제는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참 조곤조곤 새침하게 말하는 그녀를 마주하니 아침부터 무슨 권리로 내 야심찬 하루에 찬물을 끼얹나 마음이 불편하다.

'저, 안 쉬는데요? 저, 작가에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나 싶어 애써 말을 삼키며 '나만 쉬어서 미안하다.'라는 심심한 사과의 표정을 내비친다. 그러자 그녀는 본인이 울려 놓은 아이에게 "누가 그랬어, 누가!"라는 어른의 우쭈쭈한 표정으로 "어쩜 애가 그렇게 책을 좋아해요?"라며 숨겨 놓은 사탕 하나를 꺼내 놓는다. 원래 이것 주려고 울렸다는 듯이.




내 모습은 조각보처럼 서로 다른 수십 가지 모습이 이어져 있겠지만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보냐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을 볼 것이다. 누군가는 아침 등원 차량을 기다리며 책을 읽어주는 '유난 떠는 여자'로 볼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수십 권의 책을 이고지고 다니는 보부상 같을 수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동 입주민인 그녀는 터질듯한 에코백을 내려다보더니, 자기 딸은 도서관 책은 지저분하다고 싫어한다며 집에 책이 많으니 굳이 빌려주겠다는 뜻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었다. "아, 그럼 좋죠! 언제 한 번 봬요."라며 반사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괜스레 한 번 더 곱씹게 되는 건 내 자존심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녀의 우쭐한 베풂이 넌지시 보여졌기 때문일까.

그녀를 통해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 친한 친구라는 핑계로 아이의 작은 옷가지와 책들을 박스에 담아 헤치워 버리진 않았을까. 선의로 곱게 포장해 그녀의 공간을 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존심을 짓밟지는 않았을까. 내가 느낀 이 구겨진 감정을 나 역시 전해주고 있진 않았는지, 과연 온전히 정제된 마음만 담았다 자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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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누군가 원치 않는 선의를 '옜다!' 베풀고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나는야, 그들의 힘듦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이 구역의 카운셀러라는 듯이. 그리고 때론 '알고 있지만 굳이 말하진 않을게.'라며 도도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집 아이에 대한 확인 되지 않은 '카더라'같은 쓰레기를 쥐고서.

생각해 보면 내 의도는 어쨌든 간에 말하지 않음이 옳았다. 그들은 듣지 않을 권리가 있었고 굳이 바람에 흩날리는 마른 낙엽 같은 말들로 마음을 불 지필 권리 따위는 내게 없었으니깐. 그러므로 아무리 그럴싸한 쓰레기라도 한 번 더 곱씹으며 되새김질 후 내뱉어야 한다.



'knock, knock,knock'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뭐 대단한 친절처럼 문 닫고 숨어 있는 엘사를 굳이 부르는 안나다. 그녀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엘사의 행동은 매몰차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건 엘사가 원치 않지 않았나.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내가 너와 놀고 싶으니, 문을 열어라. 너의 닫힌 마음도 나와 함께라면 괜찮을 걸? 문 한번 열어봐'라는 건 어디까지나 안나의 생각이다. 몹시 날카로운 생각일지라도 혼자 되뇌며 슬퍼할 권리도 엘사에게 있다. 그 누구도 천진난만한 선의를 가장해 단단한 그녀의 성을 함부로 노크할 순 없다. 그게 제아무리 호의이자 친절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거절한다. 당신의 우쭐한 아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