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은 건조함, 담백해진 삶을 찾다.
사람의 마음을 수건으로 표현한다면, 재작년까지 제 수건은 늘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촉촉한 것을 넘어, 조금만 잡아도 물이 주욱 흐를 정도로 질퍽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심장이 축축한 상태. 기쁨도, 슬픔도, 모든 감정을 남들에 비해 훨씬 강렬하고 뜨겁게 느끼는 사람이죠. 수건을 축축하게 적시는 존재는 보통 외부에 있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물기는 더 흥건해지더라고요. 날아갈 듯 행복한 기쁨도, 이슬이 도로까지 적시는 차가운 새벽도, 마음에 찾아오면 모두 촉촉한 습기가 되어 마음의 수분을 최고치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제 마음의 수건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살짝 건조해지는 것 같은 이 느낌.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19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홀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2020년 한 해를 쏟아 부으며 친구들과 너무도 깊은 시간을 보냈던 대외활동인 ‘한국관광공사 트래블리더’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매주 보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뜸해졌죠. 원래 저는 며칠씩 집에만 머물며 ‘집콕’하는 시간을 굉장히 힘들어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홀로 지내는 나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홀로 머무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하루만 집에 있어도 찾아오던 미칠듯이 따분하다가, 밤이 되면 우울해지는 기분이 저를 붙잡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관계 속에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 변화가 일으켰던 파도가 줄어들고, 잔잔한 바다처럼 일렁이는 마음 덕분에 얻은 정적인 평화가 굉장히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기온이 조금 내려갔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삶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면서 스스로가 한층 더 성장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을 마지막으로, 저는 점점 건조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가을부터는 단풍을 보아도 ‘가을’, ‘예쁘네’, ‘추워지네’ 정도의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친구가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자, 제가 ‘은행 밟았어?’라고 대답하여 친구가 당황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더러 감성이 다 죽었다면서 사람이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주변에서는 저를 굉장히 시니컬해졌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나의 강력한 반응을 예상하면서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이 예상 외로 담담한 나의 대답에 의외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무언가 신경쓰일 법한 일이 생겼을 떄도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넘기거나 나 편할 대로 생각하면서 회복하는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나'에 집중하는 시간도 많아졌지요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주변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훨썬 너답다'며 지금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담할 때, 정말 별 일 아니라는 듯 건조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오히려 이러한 반응이 상대방을 훨씬 편하게 했어요. 상대방도 '아 이게 별일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고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별 일 아니며 상대방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기에 건넨 솔직한 말이었는데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또한 상대방의 마음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감정'에 공감하기보다는 '그 마음상태의 본질적인 내용'을 파고들며 공감하면서 전보다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사랑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 스스로의 망상으로 더하거나 덜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너무 축축해서 쓰기 힘들었던 수건을 따사로운 봄 햇살에 말려 기분좋게 말린 것처럼 말입니다. 예전처럼 계절의 변화를 뜨겁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잔잔하게 계절을 흘러가듯 보내는 삶도 굉장히 담백하고 깔끔합니다. 가끔, 마음의 수건을 건조시켜 보세요. 촉촉한 마음을 말리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는 당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이 솔직함을 드러내어도 그대로 옆에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함께 솔직해 질 수 있어요. 만약 그 사람이 떠나간다면, 자신과는 언젠간 이별했을 인연입니다.
제 마음의 수건도, 계절의 감성에 촉촉하게 젖기보다는 그 날씨처럼 따사롭고 예쁘게 건조되기를 바라는 바램을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