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 속에는 항상 서운함이 존재한다.
제가 좋아하던 한 가수 그룹의 멤버들이 SNS를 통해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서로 감정과 의견에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가 응원했던 이 그룹은 결국 '언팔로우'라는, 간편하면서도 차가운 회로와 같은 냉정한 방법으로 헤어졌습니다.
흔한 현대인의 비즈니스상 이별이지만, 저는 이 사건이 마치 제 이야기거나 앞으로 일어날 예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상대방에게 서운한 점을 잘 털어놓지 못하고 쌓아 두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서운함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로 강력한 미움의 감정으로 진화한다는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서운한 점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풀고 털어내거나, 아예 시원하게 싸우고 난 후 더욱 관계가 돈독해지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서운함을 쌓다 보면 스스로가 고장나니까요. 인간관계가 능숙해지기 전, 10대와 20대 초반의 저는 홀로 가슴을 치며 마음고생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미움의 감정이 마음 속에 커지면 본인에게 가장 괴롭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털어내고 털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는 필연적으로 서운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이 다른 '타인'이니까요.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에는 관계의 서운함을 잘 조명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조희자(김혜자 분)는 알츠하이머을 앓으며 과거 첫 아이를 열병으로 잃었던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남편도 없는 다급한 상황에서 친구인 문정아(나문희 분)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정아는 징징대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어'라며 정아를 원망합니다. 그러고는 '너는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때는 없냐'고 울부짖습니다.
서운함, 그것을 넘은 원망을 가지고 있었을 희자는 치매라는 병을 통해 비로소 친구에게 솔직해집니다. 천성이 워낙 착한 희자는 친구인 정아에게 단 한번도 자신의 솔직한 서운함을 털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자신마저도 서운함을 잊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서운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두 사이 관계 속 구석진 곳에 놓아 두었을 뿐입니다. 치매는, 타인이 지워지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면서 비로소 모든 허물을 벗어 던지고 그녀의 모든 생각을 뱉어 내게 만들었습니다.
이후에 알려진 사실로는, 친구인 정아도 당시 첫 아이를 유산했던 시기라서 희자의 어려움을 돌볼 시간이 없었던 것. 이 사건을 통해 둘은 오히려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고 험난한 인생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희자의 울분은 단순히 정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친구를 통해 어렵고 험난했던 인생을 한풀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같은 삶을 살아온 동지로서, 그 아픔에 공감해 줍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플랫폼으로 인해 문화가 파편화되며, 서운한 점을 풀어내기 위해 다른 중간재를 이용해 저격을 하는 인간관계의 방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오히려 관계를 파멸시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어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깊어지고 길어질수록 쌓이는 서운함도 늘어납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스릴지는 그 관계의 몫인 것 같습니다. 바로 돌직구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른 체 있어야 하나?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돌직구로 말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 쿨하고 깔끔하게 서운함을 해결할 수 있는 대화의 방법이 필요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삭히는 방식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상쇄함으로써 관계를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대놓고 싸운 상황이 아니라면, 서운함을 또다른 사랑으로 잊습니다. 단 그것이 잊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방 한구석으로 모른 체 숨겨 놓는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방식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점차 사람간의 관계에서 방법을 체득해 가며 상대방에게 말해야 할 것은 말하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감정은 '해소'가 아니라 '버리기'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요즘에는 서운한 마음이 잘 쌓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저를 서운하게 하는 일도 적어졌습니다. 이건 서로가 더 성숙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남들을 서운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서운함은 의도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간은 서로를 100%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감정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쌓인 서운함마저도 오래 시간을 함께한 이들이 쉬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