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 의미에 대하여

주현미의 '짝사랑'과 영화 '라라랜드', '첨밀밀'

by 김세움

유종(有終)의 미(美)



중학교 3학년, 졸업 전 마지막 학기가 끝나기 전인 11월부터 담임 선생님이 늘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어야 한다고. 졸업을 앞두고 들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 염려되어 하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열여섯 살의 저는 이 짧은 문장을 깊이 공감하고 여러 번 곱씹었습니다. 워낙 말을 잘 듣던 아이라서 선생님의 주입식 교육이 통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삶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도 '유종의 미'라는 가치는 저에게 잊지 말아야 할 인생의 중요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20대 초반까지는 이 개념을 어떠한 일이나 조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사고치지 않고 무사히 졸업/은퇴/전역하는 것만을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싸우고, 그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졸업을 앞두고 둘도 없던 친구와 싸우게 된다면 그들은 평생 서로를 최악의 동창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 친구는 없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연인 관계의 끝이 좋은 경우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죠.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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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트로트를 좋아하는 저는 20대라는 젊은 나이에도 흘러간 옛 노래들을 자주 듣고 부르는데, 특히 가수 주현미를 가장 좋아하고,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짝사랑(1990)입니다. 경쾌한 리듬 속에, 생각할거리가 많은 가사를 가진 노래이기 때문이죠.




잠깐만 잠깐만 그 발길을 다시 멈춰요

이제는 내가 미워 이제는 내가 싫어

간다 간다 아주 가

만날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돌아설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잠깐만 잠깐만 그대 나를 이리저리 스쳐가지마

불러도 대답은 깜깜

잠깐만 잠깐만 그 마음을 다시 돌려

이제는 내가 미워 이제는 내가 싫어

간다 간다 아주가

만날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잠깐만 잠깐만 쏟아지는 그 추억을 밟고가지마

불러도 대답은 깜깜


작사 김호섭 / 작곡 김영광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이다. 즉,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뜻입니다. 만남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별이 아름답기는 참 어렵습니다.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닐지라도, 학창시절이나 군대 생활을 마무리 할 때도 누구에게나 아쉬움과 이별에 대한 슬픔이 조금씩 은 존재합니다. 그 이면의 감정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한 상대방과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사의 화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잠깐만'이라며 떠나는 상대방을 붙잡고, '간다 간다 아주가', '이제는 내가 미워' 라고 외치며 제발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매달립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불러도 대답은 깜깜'입니다. 결국 상대방은 가 버렸습니다. 화자는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고 했으나, 결국 상대방이 떠나는 과정에서는 미련의 감정을 가감없이 분출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유유히 떠나 버립니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무색하게, 가사의 화자는 매우 슬픈 결말을 맺습니다. 떠나 버린 상대방은 화자를 마지막까지 질척거린 사람으로 기억하겠죠. 결국 아름다운 사랑으로 마무리하고 싶어했던 화자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쏟아지는 그 추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지 못하게 되었죠.




언젠가부터 이 노래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어 볼 수 있게 되면서, 여러 감정을 담아서 듣고 부르게 됩니다.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라는 구절에서, '사랑(love)' 를 '사람(人間)'으로 듣곤 하죠. 사실 어느 단어를 써도 의미는 통합니다. '사람'이라고 말할 경우, '사랑'이라고 말할 때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나는 지금껏 '돌아볼 때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왔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가사입니다. 저는 헤어짐과 이별이 정말 싫습니다. 그러나 이별은 필연이기 때문에 가끔은 이별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람과의 이별이 특히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전적인 이별이 있고, 한 쪽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 가사와 같은 이별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별은 필요하지만 슬픔이 남는,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가는 필수 정차역 같은 존재입니다.








이별과 재회를 함께 말하다,

영화 '첨밀밀'과 '라라랜드'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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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첨밀밀(1997)'과 미국 영화 '라라랜드(2016)'은 서로 닮은 영화입니다. '첨밀밀'에서, 대륙 출신으로 각자의 꿈을 위해 돈을 벌러 온 소군(여명 분)과 이요(장만옥 분)는 좋은 친구 사이로 어려운 외지 생활을 이겨내는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언젠가부터 친구를 넘어 연인처럼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들이 홍콩에 오게 된 목적까지 희미해지자 이요는 소군에게 각자의 꿈을 위해 이별을 선언합니다. 몇년 후, 유부남 유부녀가 된 이요와 소군은 우연히 재회하여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지만 재결합하지 못했고 한참을 방황하다가 또 몇년 후 마법처럼 미국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재회합니다.


'라라랜드'에도 만남과 이별의 키워드가 존재합니다. 배우의 꿈을 가진 미아(엠마 스톤 분)와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은 꿈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이 자신들을 알아 줄 때까지 고군분투하는 청년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연인관계로 발전하나,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관계로 변질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올수록 이러한 갈등도 거의 해결되지만, 미아가 영화에 캐스팅되어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되어 서로의 꿈을 위해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5년이 지나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고, 미아는 할리우드 인기 스타가 되어 남편과 아이까지 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미아가 남편과 재즈바를 방문하고, 우연히도 그곳에서 연주를 하는 세바스찬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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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자, 안부 인사 대신 밝은 미소를 보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륙에서 홍콩으로 왔던 날이 같은 날, 같은 기차 뒷 좌석이었다는 운명적인 과거를 보여 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라라랜드에서는 서로를 마주하게 되자 처음에 당황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다가 세바스찬의 연주와 함께 '두 사람이 함께 성공하여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두 사람의 상상을 뮤지컬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내 두 사람은 현실로 돌아오고, 꿈을 이룬 각자를 자랑스러워하듯 밝은 미소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현실에 의한 이별, 그리고 재회의 순간에서 서로에게 아름답게 미소짓는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이별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목표와 꿈을 향한 이별이었고 서로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두 영화는 모두 이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마주하기에는 참 슬픈 이별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이별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희망을 줍니다.






이별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저에게도 이별의 시기는 가까워 옵니다.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고, 아마 가족과 친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날이 머지 않았겠지요. 이러한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쓰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함께 하는 순간 속에서 생각하는 이별은 마음 한 쪽에 구멍을 뚫는 것 같은 아픔을 주지요.


주현미의 '잠깐만'처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외치고 붙잡아도 결국 멀어져버린 수많은 인연들이 존재합니다. 저도 똑같이 미련 때문에 많은 감정소모를 했고, 추억마저 밟고 지나간 자리에 상처로 남게 된 기억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이별은 분명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이별은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가다가 만난 옛 인연에게 여유로운 미소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노래 '잠깐만'에서도, '돌아설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이별을 더 성숙하게 대하게 됩니다. 각자의 꿈을 위한 이별이라면, 분명 아쉽지만 소중한 관계의 마지막 페이지가 성장으로 끝나는 것도 아름다운 마무리로 기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자주 만난다고 하여 친구인 것이 아니라, 가끔 만나도 서로가 진정한 벗이라고 느껴는 것이 진짜 아름다운 인연인 것처럼, 지금 내 곁의 친구들이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지금처럼 자주 만나고 함께하지는 못할지언정,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서로가 그 기억으로 살아간다면 '해피엔딩'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많은 만남과 이별이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과 주변 사람들과의 지금 이 자체에 집중하고, 이별의 생각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이 사람과의 미래나 앞으로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을 즐기고 행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이별부터 생각하는 바보같고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반성을 해 봅니다. 지금의 관계에 집중하고 서로 행복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가고, 소중한 사람들이 내 삶의 페이지에 한 명씩 적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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