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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로부터의 평안함

by 권승호

몇 년 전 우연히 마음에 와닿는 말을 발견하였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해줄까 고민하다가 네모 칸 넣기를 시도하여 맞춘 아이들에게 상금을 주기로 하였다. 가장 무서운 죄는 □□□, 가장 좋은 날은 바로 □□, 가장 무서운 사기꾼은 □□을 □□□ 자, 가장 큰 실수는 □□해 버리는 것, 가장 치명적인 타락은 □을 □□□□ 것, 가장 어리석은 자는 □의 □□만 □□□□ 사람. 정답 아닌 정답을 '두려움' '오늘' '자신, 속이는' '포기' '남, 미워하는' '남, 결점, 찾아내는'이라고 제시하고 마지막 문제는 하나만 맞춰도 똑같은 상금을 준다고 하여 은근히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그러나 가장 좋은 선물은 □□”이었다. 많은 학생이 ‘사랑’이라고 소리 질렀고 나는 웅성거림이 끝날 때쯤 조용하게 그러나 힘주어서 ‘용서’라 적은 후에 용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하였었다.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용서는 준법정신을 흐리게 하고, 게으름과 나태와 방종을 가져올 수도 있다. 용서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기에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도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야단치고 제재를 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법이나 규율이 존재하지 않거나 관용만을 베푼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불행이 우리 사회에 꽉 차 버릴 수도 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용서보다는 처벌이 더더욱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선의 방법 아님에도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용서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불행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용서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조성되어 있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용서가 메말라서 가슴 졸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낳고 그 용서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야단치거나 처벌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못이나 실수를 깨닫고 다시는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용서받았을 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는 실수하거나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전부가 아니기는 처벌받았을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처벌받는다고 누구나 나쁜 짓을 그만두지는 않으니까.

어떤 가수는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이라고 노래하였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용서받지 못한 사람만이 아니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괴로운 법이기 때문이다. 또, 나 역시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있고, 미래에도 적잖이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용서하라/ 마음과 다르게 말이 나오는 경우가/ 너에게도 있었지 않았느냐// 네가 이해하라/ 너에게 상처 주었던 그 말/ 분명히 /마음에 있었던 말/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 아니었을 것이다// 네가 용서하라.”

언젠가 노트에 끼적였던 시인데 어쭙잖은 내 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중얼거림도 있다. “잘못 깨닫고 미안하다는 말 하려고 하였는데/ 시간 놓치고/ 그 뒤엔 어색하여/ 끝내 말하지 못하였던 경우가/ 너에게도 있었지 않았느냐?/ 이해하고 또 이해하라/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

학년이 끝나기 직전 아이들에게 평가를 받아보곤 했는데 언젠가 한 아이가 가끔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이 나의 단점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잠시 서운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를 뒤돌아보았고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 조금씩 노력한 결과 요즈음은 거의 화를 내지 않고 용서하곤 한다. 화내지 않아도 아이들은 모두는 착하고 바르게 생활해 주었음을 통해 용서의 미학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잘못을 못 본 척 지나치지는 않는다. 반드시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반성을 확인한 후에 용서한다. 동시에 무언의 암시도 준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누군! 가를 용서하라고.

악은 또 다른 악을 낳고 선은 또 다른 선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처벌은 처벌을 가져오고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불러온다. 모든 일이 그렇듯 용서도 처음이 어렵지 습관을 들이면 결코 어려운 일 아니다. 용서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싶다. 용서가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용서하자. 필요하면 잘못을 인식시킨 후 용서하고 또 용서하자.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우리 모두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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